이승욱 서울대 명예교수 보건학

사회적으로 새로운 현상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에 관한 지식습득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다. 가장 근래의 사례는 코로나19다. 초등학생부터 100세 고령자에 이르기까지 코로나에 대해 모두가 전문가다운 지식을 토할 줄 안다. 확진자, 격리, 무증상감염자에서부터 사회적 거리, 단계별 방역수칙, 변이바이러스, 게다가 교차접종, 돌파감염 같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거의 듣도 보도 못했을 용어들임에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지식으로 무장한 국민은 정부에 협조해 한 덩어리가 돼 방역에 노력했다. 가히 ‘코로나국민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이처럼 국민은 정부가 반포하는 단계별 방역수칙에 놀랄 만큼 충실하게 잘 따르고 있다.

반면, 정부는 놀랄 만한 K-방역의 성과를 홍보하는 데 겸손함이 없었다. 백신이 있다면 상당한 방역 효과를 갖는다는 신념 속에 국민은 백신 확보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정부는 임상시험이 완결되는 과정에 백신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해 백신 확보보다는 K-방역에 전력을 쏟았다. 통계적으로 보면, 19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우리나라는 세계 85위로 비교적 낮은 확진자 수와 근 10%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의 치명률을 가진 국가들에 비해 1.1%의 낮은 치명률을 보여 세계 111위의 안전한 국가가 됐다. 정부의 K-방역 성과다. 하지만 이는 불철주야 방호복 속에 땀으로 세월을 보낸 의료진의 헌신 덕분이다.

방역은 질병이 창궐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 맞다. 그러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백신 접종이다. 우리 정부가 K-방역에 심취한 동안 세계 유수의 제약사가 개발한 백신을 주요 선진국들은 서둘러 확보하고 있었다. 백신 확보에 선비 수준이었던 정부와 백신을 절실하게 원하는 국민의 코로나국민주의가 이 단계에서 확실하게 벌어져 갔다. 정부는 재난기부금을 거론했지만, 국민은 오히려 백신 미확보에 불안이 커져만 갔다.

무너져 가는 자영업, 행동의 자유를 억압받는 국민, 텅 빈 학교 캠퍼스의 뒷길을 따라 비명과 신음이 커져 가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코로나국민주의는 정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문제는 백신이었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정부는 백신을 구입하기 위해 나섰지만 재빠른 선진국들이 이미 백신을 입도선매(立稻先賣)해 버려 우리는 번호표만 움켜쥐고 있다. 당장, 다음 주(8월 2∼8일)로 접종이 예정돼 있던 모더나 백신은 생산 회사의 설비 문제로 국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그나마 일부 확보된 백신을 취약 계층부터 접종했으나 그 수치는 미미하다. 도입 예정 수량 통계에 국민이 식상해 하자 이번에는 1차 접종률의 통계에 목을 맨다.

변이바이러스에 의한 또 다른 위협 속에, 국민의 코로나국민주의는 백신 접종을 예약하기 위한 웹 사이트의 먹통으로 나타났다. 재난지원비나 방역수칙 집행에 전념해온 정부 행정은 백신 행정의 난맥으로 이어졌다. 아덴만 파견 청해부대 집단감염은 전형적인 사례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충분한 백신 확보다. 변이든 뭐든 국민 모두에게 백신을 접종하자. 안심하고 조속히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게 국민의 코로나국민주의의 현주소다. 이미 국민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다. 문제는 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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