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장편 ‘밝은 밤’ 펴낸 최은영
‘증조모 ~ 나’까지 여성 4代
100여년 시간 관통하는 삶
절망·치유·회복 과정 담아
“나 대신 말해줘”라고 하는
잊힌 사람들 얘기 전하고파
최은영(37) 소설가의 첫 장편 ‘밝은 밤’(문학동네)은 그렇게 지어진 이름이다. 밝은데 밤이고, 밤이지만 밝다. 슬픈 기운이 감돌지만, 어딘지 조금 희망이 움트는 것 같다. 2년여 슬럼프에 빠졌던 최 작가는 이번 소설을 쓰며 “다시 몸과 마음을 얻었다”고 했고, 오정희 소설가는 “슬픔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더 큰 슬픔의 힘”이라고 작품을 평했다. 밖에선 모르는, 들어가야 보이는 그 이야기. 최 작가를 만나 들어봤다.
“인생의 풍랑을 만나 표류하는 심정으로 썼어요. 그러니까 이 소설이 내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통나무였던 셈이죠.” 지난 23일 문화일보에서 만난 최 작가는 “이제야 육지에 발을 디뎠다”며 웃었다. 최 작가는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사랑받으며, 한국문학의 미래로 주목받아왔다. 신간은 3년만. 잠시 숨을 고른 후 돌아왔다.
소설은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삶을 비춘다. 이혼후 서울생활을 정리한 지연이 ‘희령’에서 할머니와 20년 만에 재회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100년의 시간을 관통하고,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재구성된다.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도, 약자 중의 약자였던 여성들의 삶을 그린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어떤 ‘계보’를 찾는다. 그러니까, 지연이 겪는 상처와 절망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치유와 회복의 실마리를 말이다. “한국사회는 세대 차가 심하면서도, 한편으론 서로 굉장히 닮았잖아요. 또 그건 연결돼 있는 거거든요. 세상이 진보했다고 해도 할머니 세대가 겪은 문제들을 우리 세대가 여전히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여성들이 공유하는 그런 ‘여정’ 같은 걸 찾고 싶었어요.”
소설 속 지연은 개인사로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지난 2년을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라고 고백한 최 작가가 투영된 듯하면서도,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는, 다소 수동적인 성격이기도 하다. 즉, 잊힌 ‘계보’를 찾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소설가 최은영과 때로는 대척점에 서는 인물이다.
최 작가는 “우리 사회엔 역사와 관계 깊은 집단 트라우마가 존재하는 것 같다”면서 “그걸 해결 못 하고 상처를 대물림하고 있으니, 다들 그렇게 날카롭고 분노가 심하고, 무서워지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이제 부정적인 옛이야기는 그만하자고들 하죠. 그러면 그 상처는 계속 누적되는 거잖아요. ‘나 대신 말해줘’라고 하는, 잊힌,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요.”
회피적이던 지연이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종반을 향해 나아간다. 최 작가 또한 소설을 마무리 지으며, 마음의 풍랑이 잠잠해짐을 느꼈다고 했다. 어떤 한고비를 넘고 말았다는 안도감 같은 ‘그것’.
“제가 다신 글을 못 쓸 거라고, 제 무릎을 꺾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더 열심히 썼어요.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쓰는 일이, 제 몸에 착 붙었어요. 작가라는 직업이 완전히 제 것이 된 기분이에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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