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봄부터 정상 간 친서를 은밀히 주고받더니 남북한이 통신연락선을 전격 복구했다. 북한이 지난해 6월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차단하고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한 지 413일 만이다. 4월부터 물밑 교섭이 시작됐고, 5월에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방미(訪美)해 미국과 조율하면서 구체화됐다. 1971년 처음 설치된 이래 남북 관계 변화에 따라 7차례 중단과 재개가 반복된 통신연락선은 상징적 측면이 강하다. 북한은 일방적 연락선 단절을 통해 불만을 표출하고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통신선을 복원한 만큼 그 저의 분석이 필요하다.

우선, 남측에 대한 지렛대를 갖게 됐다. 임기 말 문재인 정부와 거래할 시간은 7개월 남짓이지만 여전히 효용성이 있다는 게 평양의 분석이다. 북한은 당장 다음 달 하반기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의 중지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군 당국의 기류를 보면 규모를 줄여서라도 훈련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하지만 남북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청와대와 국정원 지휘부는 북한 통일전선부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 이미 합의가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10여 차례의 친서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이상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음은, 식량과 백신의 지원 요청이다. 19개월째 계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한 북·중 국경 봉쇄는 북한의 경제난를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식량 부족 사태로 장마당에서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인도적 명분을 들어 대북 지원이 물밑에서 논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끝으로, 대미 지렛대 확보 차원이다. 임기 말 문 정부지만 평양을 위해서라면 워싱턴을 조르고 압박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청와대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평양·판문점 선언을 포함시키는 데 올인했다. 평양의 관심은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생사겨루기’다. 이미 평양은 2019년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미·북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남북 관계도 전진할 수 없다는 점을 철저히 인식했다.

레임덕이 시작된 문 정부로서는 남북 관계라는 메가 이슈를 통해 정국을 주도할 것이다. 여야 잠룡들의 이전투구가 시작된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연말까지는 핵폭탄급 카드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 간 핫라인 복원에 대해 “차차 논의할 사안”이라고 밝혔듯이, 후속 일정으로 정상회담 성사에 주력할 것이다. 하지만 화상이든 대면이든 임기 말 정상회담은 양날의 칼이다. 역대 남북 정상회담은 남측의 요구로 북측이 은혜를 베풀어 개최에 동의하는 형태였다. 특히, 2007년 10·4 정상회담처럼 임기 말 정상회담이 가져온 폐해는 차기 정부가 고스란히 떠맡을 수밖에 없다. 임기 5년의 단임 대통령이 종신 독재자를 상대로 협상은 한계가 있다. 과욕은 금물이다.

결과적으로 갑을 관계의 정상 간 만남은 이면 거래 및 약속 등 다양한 부작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만행에 대해 어떤 사과나 유감 표명 없이 통신선 복원에 감지덕지하며 북한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한다면 ‘공정’ 키워드에도 어긋난다. 불공평한 정상회담은 역풍을 맞거나 남남 갈등의 소재로 전락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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