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우천 기자
지난달 9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지구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 참사는 무리한 철거방법 선택과 시공사·하도급업체 안전관리자 및 감리자의 주의 의무 위반이 복합적으로 빚은 전형적인 인재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건물 붕괴 원인으로는 비정상적인 철거작업으로 해당 건물을 ‘ㄷ’자로 파먹어 횡 하중(중력의 방향과 직각으로 교차하는 면 안의 작용 하중)에 취약한 상태로 변형시킨 상황에서 건물 내부에 쌓은 성토물 등이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28일 오전 중간수사결과 브리핑을 갖고 “공사에 직접 관여한 관계자 조사, 목격자 진술, 압수수색 자료 분석 등을 통해 확인된 증거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분석됐다”고 밝혔다.
국과수가 사고 건물의 철거계획서를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건물의 외벽을 철거할 때 강도가 낮은 쪽 벽부터 철거를 진행하는 원칙이 지켜졌어야 한다. 또 3층 높이에 상당하는 성토물을 쌓은 뒤 옥탑 건물을 포함한 4∼5층을 철거하고, 이후 성토물을 제거한 후 1∼3층을 철거해야 한다. 특히 철거된 폐기물이 하층부 바닥 슬래브 등에 쌓여 집중 하중으로 인해 슬래브가 붕괴되지 않도록 폐기물은 건물 외부로 반출돼야 한다.
그러나 실제 철거 과정에서는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먼저 강도가 약한 곳부터 차례로 외벽을 철거해야 하지만, 이 순서가 지켜지지 않았다. 또 4∼5층이 아닌, 하층부 일부를 먼저 철거함에 따라 사고 건물은 횡 하중에 취약한 ‘ㄷ’자 형태로 변형됐다. 더구나 건물 내부에 쌓지 말아야 할 성토체를 조성했고, 굴삭기에 탑재된 압쇄기가 건물 상층부까지 닿지 않자 굴삭기가 건물 내부까지 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1층 바닥과 지하공간은 성토체 및 굴삭기 하중에 짓눌려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됐는데도 그 부분에 대한 보강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사고 건물이 횡 하중에 취약한 불안전한 평형 상태로 진전된 상황에서 성토물 및 1층 바닥 슬래브가 무너지면서 횡 하중이 도로 쪽으로 작용해 건물이 붕괴된 것으로 국과수는 분석했다. 다만, 성토물과 1층 바닥 슬래브 중 어느 것이 먼저 무너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그동안 공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원청·하도급·불법하도급업체와 감리 관계자 9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으며 이 가운데 5명을 구속했다. 구속된 사람 중 감리자 A 씨는 단 한 차례도 현장 감리를 실시하지 않는 등 감리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시공사 현장소장 B 씨와 하도급 업체 2곳의 현장소장 C·D 씨는 해체계획서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철거공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안전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 불법으로 재하도급받은 업체 대표 E 씨는 해체계획서를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철거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부정한 청탁을 받고 감리자를 선정한 광주동구청 직원과 재하도급 금지규정을 위반한 하도급업체 대표, 원청업체 안전부장·공무부장 등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불구속 송치하기로 했다.
경찰은 또 원청업체에 대해서는 불법 재하도급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관할 행정관청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 사실을 통보했다. 또 공사의 공동 수급자로 계약을 체결하고도 실제 공사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수익지분만 챙기는 ‘지분 따먹기’가 관행적으로 이뤄졌으나 이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계 기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지분 따먹기는 필연적으로 입찰방해, 불법하도급 등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결국 공사 단가 하락에 따른 부실공사로 이어져 안전사고 위험을 증대시키므로 처벌 법규(형사처벌, 과징금, 입찰자격 제한 등)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계약·수주 과정의 비리 의혹과 관련, 14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공사업체 선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브로커 F 씨를 구속했다. F 씨와 공범인 문흥식(60) 전 5·18구속부상자회장은 해외로 도피한 채 아직도 귀국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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