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금기(禁忌)’의 영역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건들지 말아야 할 핵심 이슈가 ‘호남 차별’ 문제다. 당의 뿌리가 호남에 있다 보니 영남 출신 후보들이 이 문제에 잘못 접근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번에도 영남 출신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백제 발언을 꺼내면서 다시 불이 붙고 있다.
호남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3년 7월 16일 친구인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이 호남에 갈 때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국가 군량을 호남에 의지했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충무공의 언급이다. 곡창지대인 호남이 왜(倭)에 점령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는 의미인데 지금은 호남의 정치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백제 발언 논란은 이재명 지사가 지난 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당 대표 출마하시면서 (경기도에) 오실 때 내가 진심으로 꼭 잘 준비하셔서 대선 이기시면 좋겠다, 이 말씀 드렸다”며 “그 말씀을 드렸던 이유는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 호남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예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 전 대표는 “어떤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확장력을 얘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불쾌감을 토로했다. 이 지사는 “떡 주고 뺨 맞은 격”이라고 했지만 ‘호남 출신은 확장력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영남 역차별론’에 이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시민들이 왜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이 발언이 다시 논란이 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의원과 함께 호남 지역을 다니며 무마를 시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9월 호남 지역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호남사람들이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 나를 찍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충청 핫바지론’ ‘우리가 남이가’ 등 지역 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이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했다. 간신히 봉합된 지역 정서가 좀비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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