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도 전염병이 창궐하면 감염자와 의심 환자를 격리하는 병막을 운영했다. 사진은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한석규 분)이 전염병 창궐지를 둘러보는 모습.
조선 시대에도 전염병이 창궐하면 감염자와 의심 환자를 격리하는 병막을 운영했다. 사진은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한석규 분)이 전염병 창궐지를 둘러보는 모습.
■ ‘코로나와 일상…’ 학술대회

영·정조때 가장 체계적인 대응
감염자 수용 위한 ‘병막’ 운영
남녀노소 할것 없이 몰아넣어
병세 악화 등 거부감 커 혼란
정조 “전염 확인된 자만 격리”

고려시대 역병 막는 풍습 유행
‘복숭아나무 꽂기’ 등 자리잡아


“전염병임을 분명히 알고 나서 성 밖으로 내어 보내는 것은 본래부터 바꿀 수 없는 법칙이나, 어제 승선(承宣)의 말을 들으니 외감(外感)으로 몹시 아픈 자를 그만 모두 낫기 쉬운 병으로 돌린다고 하는데,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부속(部屬)이 소란을 일으키는 마을이 필시 많이 있을 것이다. 십분 고찰하여 분명히 확인된 자 외에는 교외의 병막으로 내보내지 말도록 한성부 및 각 부의 낭관에게 역시 일체로 엄중 신칙(申飭·단단히 타일러 경계함)하고….”

조선 중기 이후 국정 최고 의결기관 비변사(備邊司)에서 매일 업무 내용을 기록한 ‘비변사등록’의 1784년(정조 8년) 4월 28일 자에 이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전염병이 창궐하자 정부가 서울 근교는 물론 지방에도 감염자를 수용하기 위한 병막(病幕)을 설치해 운영했고, 격리 과정에서 적잖은 반발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전염병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기 어려운 혼란과 갈등 등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국립민속박물관 주최로 열린 ‘코로나19와 일상의 변화’ 기획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조대 방역 : 안전과 호혜의 모색’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근대 이전의 우리 역사에서 역병에 대한 가장 활발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이뤄진 것은 영·정조 치세기인 18세기 조선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홍역의 시대’라고 부를 만한 18세기 조선에서도 전염병에 대한 가장 우선적인 대응은 격리였다. 특히 왕이 거주하는 서울 도성의 역병 관리는 매우 엄격했는데, 감염자와 의심 환자를 모두 찾아내 도성 밖으로 격리하도록 했다. 한성부는 이 일을 도맡아 처리했고 정기적으로 보고했다. 지방에서는 감사들이 관내 역병 환자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고, 격리 병막도 관리해 보고하도록 했다. 병막은 바닥과 지붕을 만들고 나무 기둥을 세워 임시 텐트와 같은 모양의 집이었다. 단지 격리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정조대에는 특히 진휼청을 통해 격리된 환자들에게 적절히 곡식을 공급해 자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도 혼란은 피할 수 없었다. 남녀와 장유(長幼), 반상(班常) 구별이 뚜렷했던 시기에 모든 환자를 병막에 몰아넣는 것에 대한 거부감, 도리어 병막에서 병세가 악화할 우려 등으로 역병 환자가 분명한데도 가벼운 질환이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있었다.

김 교수는 “역병의 유행이라는 재난 상황에 국가의 역할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며 재난이 닥쳤을 때 서로 돕도록 한 조선 향약(鄕約)의 환난상휼(患難相恤) 규약이 공동체 유지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 여부와 상관없이 근대 의술 도입 이전에 감염병 자체에 대한 치료는 쉽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와 민간 할 것 없이 치료보다는 방역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고려시대 전염병의 유행과 민간 풍속’을 주제로 발표한 이현숙 연세대 의사학연구소 교수는 고려시대에 발달한 다양한 전염병 대응책을 소개했다. 불교 국가인 고려는 조선에 비해 대외 교류가 활발했고, 거란·여진·몽고·왜구 등의 침범으로 전쟁도 빈번했다. 이는 잦은 전염병 창궐로 이어져 경종(981년)과 예종(1122년), 인종(1136년) 등 20대의 젊은 국왕이 전염병으로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고려시대에는 고열을 동반하는 온병(溫病)이 유행해,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각종 벽온(僻溫) 처방과 풍습이 유행했다. 벽온단 복용과 같은 의학적 접근뿐 아니라 대문 위에 복숭아나무 꽂기, 마당에서 폭죽 터뜨리기 등 민간의 유행이 세시 풍속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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