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의 꽃의 문화사 - ⑥ 해바라기
3000년전 북미서 재배… 씨앗은 빵가루·염료, 뿌리는 약용, 잎과 줄기로는 바구니 만드는 등 버릴 것 없어
16세기 유럽 전해지며 반 고흐·오스카 와일드가 신봉… 황금비·수열 등 수학원리도 담겨있어
우리에게 익숙한 큰 키에 커다란 얼굴을 가진 해바라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 2000~3000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원래 야생 해바라기는 여러 줄기에 작은 꽃들이 피는 종류였는데 좀 더 큰 씨앗을 수확하기 위해 점점 외줄기에 큰 꽃이 피는 종이 선택됐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해바라기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씨앗은 주로 가루를 내어 빵을 만들어 먹거나 염료로 사용했고, 뿌리는 뱀에 물린 상처 등에 약용으로 사용했으며, 잎과 줄기는 바구니를 제작하는 데 쓰기도 했다. 멕시코인의 선조인 아즈텍족은 이 꽃을 태양신의 이미지로 숭배했다. 아즈텍족은 순금 조각으로 만든 해바라기로 신전을 장식했고, 사제들은 해바라기 왕관을 썼다. 해바라기는 전쟁의 신을 상징하기도 해서 방패에 그려지기도 했고, 연회나 잔치 때는 귀족들을 위한 선물이 되기도 했다.
해바라기가 유럽에 알려지게 된 것은 16세기 초 스페인 선원들에 의해서였다. 그 후 많은 양의 해바라기 씨앗들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도입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진짜 해를 닮은 커다란 해바라기 꽃에 대한 뉴스는 “새로운 발견” “기쁜 소식”이라고 회자되며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왕권신수설을 주창했던 잉글랜드의 찰스 1세, 프랑스의 루이 14세 등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들이 강력한 군주제를 펼치던 시기에 해바라기는 유럽에서 절대 왕정에 대한 헌신과 충절을 상징하기도 했다. 일례로 바로크 시대의 궁정 화가 앤서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는 자화상에 큼직한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이는 찰스 1세에 대한 충절을 나타낸 것이었다.
18세기에 걸쳐 왕권이 힘을 잃으며 태양의 꽃 해바라기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심지어 정원에서는 다른 식물들 사이에서 너무 크게 자라는 해바라기를 꺼리기도 했다. 하지만 해바라기는 19세기 후반부 많은 예술가 사이에서 다시 크게 유행했다. 해바라기를 화폭에 그린 가장 유명한 화가는 아마도 고흐일 것이다. 네덜란드를 떠나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으로 가게 된 고흐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한껏 들떠 있었고 고갱과 함께 작업할 화실에 걸어두기 위해 많은 해바라기 작품을 그렸다. 해바라기는 고흐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는데, 그에게 해바라기는 죽음을 극복한 생명의 아름다움, 적극적인 삶의 의지, 밝고 환한 자기 긍정 등 희망 그 자체를 의미했다. 이 때문에 고흐는 태양의 화가라는 별명을 갖게 됐고, 해바라기는 다른 꽃들이 부러워할 만한 지위를 영속적으로 갖게 됐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가장 성공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도 해바라기 열풍에 크게 한몫했다. 180㎝가 넘는 큰 키에 비로드 바지를 입고 장발을 하고 다녔던 그에게 해바라기는 그가 신봉했던 유미주의(唯美主義)를 알리는 핵심적인 도구이자 시각적 상징이었다. 그는 예술가에게 가장 온전한 기쁨을 주는 디자인의 완벽한 모델로서 해바라기를 예찬했다. 이 시기 해바라기는 예술가의 미적 충성심을 촉구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 운동으로서 실용성보다는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진귀함을 추구한 유미주의 예술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와일드는 19세기 말 1년 동안 미국에 초청돼 미학에 관한 강연을 펼쳤을 때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늘 해바라기 꽃을 지니고 다녔다. 그를 비판하는 풍자 잡지에서 와일드는 화분에 심어진 해바라기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그의 얼굴은 해바라기 꽃잎으로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해바라기는 수많은 꽃이 한데 모여 하나의 꽃머리를 형성하는 국화과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큼직한 두상화를 가지고 있다. 가장자리의 화사한 노랑 꽃잎으로 꽃가루 매개자(pollinator)를 유혹하는 혀 모양의 설상화(ray flower)들은 암술과 수술이 없는 가짜 꽃이다. 그리고 안쪽에 적갈색 대롱 모양의 작은 꽃들로 모여 피며 나중에 수많은 씨앗을 맺는 관상화(disc flower)들이 바로 실제 꽃의 역할을 한다. 수천 송이의 작은 설상화와 관상화가 하나의 머리 모양으로 동그랗게 모여 있는 모습은 마치 이글이글 불타는 태양이 사방으로 햇빛 광선을 방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꽃줄기의 방향을 트는 이유는 해를 마주하는 잎들의 광합성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다. 주로 꽃이 막 피어 나는 시기에 꽃봉오리와 어린 꽃들에서 굴광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해가 뜰 땐 동쪽으로 바라보고 해질 녘엔 서쪽을 향한다. 꽃이 완전히 피어 줄기가 굵어져 머리가 무거워지고 나면 해바라기는 보통 동쪽을 바라보고 멈추어 서는데, 이것은 온기를 좋아하는 꽃가루 매개 곤충들이 꽃을 더 많이 찾아오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를 이용하는 놀라운 전략이다.
해바라기는 또한 자연에서 발견 가능한 황금비와 피보나치 수열의 대표적인 사례로도 유명하다. 12세기 말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에 의해 제시된 피보나치 수열은 앞의 두 수의 합이 바로 뒤의 수가 되는 수의 배열(1, 1, 2, 3, 5, 8, 13, 21, 34, 55 …)을 말하는데, 계속 진행이 될수록 이웃하는 두 수의 비율이 황금비(약 1.618)로 수렴한다. 황금비는 어떤 두 수의 합과 두 수 중 큰 수의 비율이 두 수의 비율과 같을 때 나타나는 값이다. 해바라기의 가운데 부분을 꽉 채우고 있는 수백 수천 개의 관상화는 꽃의 중심에서 시작해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의 나선형 패턴을 이룬다. 웬만한 크기의 해바라기 꽃에는 시계방향으로 55개, 반시계방향으로 34개의 나선형 패턴을 이루는 관상화가 배열된다. 좀 더 작은 꽃의 경우엔 각각의 나선 개수가 21개와 34개, 아주 큰 꽃은 89개와 144개로 배열되는 식이다. 이 숫자들은 모두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는 연속된 두 개의 숫자다. 각각의 관상화가 피는 방향도 황금각도인 137.5도를 이룬다. 이를 통해 해바라기는 제한된 최소한의 공간 안에서 서로 겹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수의 씨앗들을 밀집해 배치할 수 있다.
해바라기는 유럽으로 건너온 이래로 초기엔 장식용이나 약용, 또는 커피 대용으로 이용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기름용 씨앗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7세기 후반에는 유럽을 가로질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까지 퍼져나갔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불을 지핀 사건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순절 시기 모든 기름과 지방으로 만들어진 음식 소비를 금지한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새롭게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해바라기는 이러한 금지 품목에서 제외됐고, 자연스럽게 해바라기유에 대한 소비가 어마어마하게 급증했다. 수요에 부응하고자 더 크고 많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해바라기 품종들도 많이 개발됐는데, 꽃 지름이 50㎝에 이르는 ‘매머드 러시안(Mammoth Russian)’ 같은 품종도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동유럽인들이 북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다시 수많은 해바라기 씨앗들이 대서양을 건넜다. 16세기 아메리카를 떠났을 때 평범했던 해바라기가 엄청난 품종들로 개량돼 다시 고향 땅을 밟은 것이다. 그 후 미국에서는 동물 사료용 해바라기 재배가 급증했고 1920년대부터는 해바라기유 가공 공장들이 대거 생겨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에서도 오늘날 주로 기름 생산을 위해 해바라기를 재배하는데, 해바라기유는 현재 야자, 콩, 유채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중요한 기름 작물이 됐다.
광범위한 교배 육종을 통해 탄생한 정원용 해바라기 품종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특히 시골풍의 자연스러운 코티지 가든의 화단 같은 혼합 절충식 화단에서 인기가 높다. 큰 키에 꽃머리가 하나인 원래의 전통 식물도 쓸 수 있지만, 더 작은 키에 꽃도 더 많이 달리도록 육종된 품종도 매우 폭넓게 이용 가능하다. 여러 품종을 적절히 선택하면 여름과 가을 내내 정원을 밝히는 좋은 소재가 된다. 진한 마호가니 색깔의 꽃을 가진 ‘벨벳 퀸(Velvet Queen)’, 옅은 노란색의 ‘문샤인(Moonshine)’, 복슬복슬한 겹꽃 설상화가 인상적인 ‘테디 베어(Teddy Bear)’와 ‘선골드(Sungold)’, 그리고 노란색뿐 아니라 주황색과 빨간색이 섞여 있는 ‘어텀 뷰티(Autumn Beauty)’ 같은 품종도 있다. 큰 키 해바라기는 접시꽃 같은 키 큰 식물과 함께 섞어도 좋고, 중간 키 해바라기는 플록스와 에키네시아 같은 식물들과 잘 어울린다. 보통 해바라기는 일년생이지만 다년생 숙근 해바라기도 있다. 이들은 별도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매년 그 자리에 계속해서 피어나니 좋다. 키가 2m가 넘는 맥시밀리언 해바라기(H maximilian)가 가장 인기가 많다. 꽃은 좀 작게 피는데 노란색으로 늦여름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계속된다.
여름과 가을 정원을 밝히는 해바라기는 가장 뜨겁고 힘든 계절에 우리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되새기게 해주는 꽃이다. 해바라기 꽃의 강렬한 색은 우리 안에 어떤 뜨거운 생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또 단 한 줄기의 빛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진화한 꽃이 여름 내내 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에너지는 고스란히 수많은 씨앗에 담겨 우리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의 소중한 에너지원이 된다. 해바라기 열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전 세계 절화 시장에서 해바라기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 품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고흐’ ‘빈센트 초이스’ ‘선리치’ 등 인기 품종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해바라기의 특징들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역사상 다양한 상징과 은유의 모티브가 돼 왔던 해바라기는 여전히 동서양에서 모두 최고의 가치를 품고 있다. 동양권에서는 꽃이 황금색이라 하여 재물과 행운을 상징하고, 서양권에서는 꽃이 오래가고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딘다 하여 장수를 상징한다. 해바라기씨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산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고, 칼슘과 철분 같은 미네랄과 각종 비타민이 우리 몸에 매우 이로운 것은 덤이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헬리안투스 안누스(Helianthus annuus·해바라기)
속명인 헬리안투스(Helianthus)는 그리스어로 태양을 뜻하는 헬리오스(helios)와 꽃을 뜻하는 안토스(anthos)가 합쳐진 말이며, 종명인 안누스(annuus)는 한해살이를 뜻한다. 미국 서부, 캐나다, 멕시코 북부의 건조한 평원에서 자라며, 미국 캔자스 주를 상징하는 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해바라기유 최대 생산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나라꽃이기도 하다. 꽃은 지름 30㎝에 이르며 주황색 혹은 노란색 설상화와 갈색 혹은 보라색의 관상화로 이뤄져 있다. 배수가 잘되고 보습력이 좋은 토양에서 잘 자라며, 일반적으로 4∼5월에 파종하면 8∼9월에 꽃이 핀다. 키는 보통 1.5∼3m까지 자라는데, 기네스북에는 독일에서 9m가 넘게 재배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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