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형 소설 플랫폼 ‘채티’에서 화제를 모은 ‘시골 로맨스’(왼쪽·가운데)와 ‘밀리의 서재’에 공개된 ‘시체가’(오른쪽)의 한 대목을 캡처한 사진. 요즘 10대들은 모바일 메신저 대화창처럼 인물들의 대화로만 진행되는 채팅형 소설을 직접 창작하며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채티·밀리의 서재 제공
채팅형 소설 플랫폼 ‘채티’에서 화제를 모은 ‘시골 로맨스’(왼쪽·가운데)와 ‘밀리의 서재’에 공개된 ‘시체가’(오른쪽)의 한 대목을 캡처한 사진. 요즘 10대들은 모바일 메신저 대화창처럼 인물들의 대화로만 진행되는 채팅형 소설을 직접 창작하며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채티·밀리의 서재 제공
■ ‘채팅형 소설’이 뜬다

인물들의 대화로만 전개… 비 오는 장면선 대화창에 물줄기·살인장면에선 피 튀는 이미지
10대들 중심으로 독자층 확산… 하루 평균 5000여건 직접 콘텐츠 창작도 늘어나
간결한 언어사용 즐기는 Z세대 최적화… 일반 소설보다 전달력 세고 웹툰보다 제작 편해
아직은 비속어 남발 작품 많아… 전문가들 “자정작용 통해 콘텐츠 질 상향 평준화해야”


‘카카오톡’ 대화창처럼 화면 양쪽에 작은 원으로 된 ‘프로필 사진’이 뜬다. 사진 옆에 적힌 이름은 소설 캐릭터 명칭. 손가락으로 대화창을 톡톡 누를 때마다 캐릭터들의 대사가 말풍선에 담겨 떠오른다. 간혹 작가의 배경·심리 묘사가 나오지만 기본적인 서사 전개는 모두 인물들의 대화로만 이뤄진다. 비가 오는 대목에선 대화창에 물줄기가 쏟아지고, 살인 장면에선 피가 튀는 식의 ‘이미지 묘사’도 나온다.

화면을 ‘탭(tap)’ 하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채팅형 소설’이 Z세대(1995년부터 2004년 출생)의 놀이 문화로 부상하고 있다. 주 독자층인 10대들은 콘텐츠를 즐기는 것을 넘어 직접 창작까지 하며 새로운 세대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 소설’보다는 전달력이 강하고, ‘웹툰’보다는 제작 편이성이 높은 채팅형 소설은 두 형식의 장점을 취합한 하이브리드 장르라는 평가를 받는다. 모바일 메신저 등 SNS 사용이 익숙한 세대에게 최적화된 형식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간결한 언어 사용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스몰 토크(small talk)’가 소설의 형식으로 구현된 것”이라며 콘텐츠의 전반적 질을 끌어올려 독자층을 확대하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조언하고 있다.

◇‘카톡’하듯 소설 쓰는 10대들, 플랫폼에 하루 평균 5000여 건 올라와

채팅형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플랫폼은 가입자 360만 명을 보유한 ‘채티’다. 이 플랫폼엔 채티와 정식 계약을 맺은 기성 작가가 작품을 공개하는 카테고리와는 별도로 가입자들이 제약 없이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유저 창작 공간’이 있다. 이호진 채티 PD는 “PC와 모바일에서 누구나 소설을 창작할 수 있는 편집 툴을 배경 이미지 등과 함께 서비스하고 있다”며 “가입자의 약 70%가 10대이며 직접 콘텐츠를 올리는 창작자들 대부분도 10대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유저 창작 공간에는 하루 평균 5000∼6000건, 한 달 기준으로는 15만 건 정도의 작품이 올라오고 있다. 장르는 학원물과 로맨스 판타지 등이 주를 이룬다. 소설의 인기도는 화면을 눌러야 다음 대사가 뜨는 특징을 반영해 ‘탭’이라는 지수로 공개된다. 지난 2018년 서비스 첫 출시 이후 독자 호응이 높았던 ‘4명의 양아치 동거남’ ‘시골 로맨스’ 등은 각각 8억1000만, 2억2000만 탭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챗봇’(대화 서비스 로봇) 업체인 ‘띵스플로우’는 최근 ‘스토리플레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말풍선으로 제시되는 복수(複數)의 선택지 중 무엇을 고르느냐에 따라 이야기 전개 방향이 달라지는 ‘인터랙티브(쌍방향) 요소’를 강화한 게 특징이다. 국내 최대 독서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도 챗북 서비스를 통해 ‘비혼주의적 연애’ ‘3학년 2반 살인사건’ 등 다양한 장르의 채팅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Z세대 ‘스몰 토크’가 소설 장르로 발전”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이 같은 채팅형 소설에 대해 “젊은 세대가 구사하는 ‘스몰 토크’가 문학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소장은 “요즘 10∼20대는 ‘줄임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카카오톡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너 어디야?’ ‘지금 뭐 해?’ ‘나 가고 있어. 조금 이따 봐’ 같은 소소한 대화를 쉼 없이 나눈다”며 “채팅형 소설은 이런 ‘스몰 토크’에 기반한 ‘카톡 메시지’가 ‘소설’이 되는 시대가 됐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간결하고 가벼운 ‘스낵 글’을 선호하는 Z세대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가짜 인간’이란 채팅형 소설로 화제를 모은 김바닥 작가는 “‘반지의 제왕’ ‘트랜스포머’ 같은 작품을 보며 자란 30∼40대만 해도 화려한 영상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거대 자본이 투입된 콘텐츠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태어난 10대는 시각적 기술력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채팅형 소설은 ‘담백함’이나 ‘간결함’을 세련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10대 성향을 충족하는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도 “별것 아닌 것에도 ‘깔깔깔’ 웃고 눈물 흘리는 10대의 감수성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 채팅형 콘텐츠가 주목받는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콘텐츠 질 높여 10∼20대 한정 독자층 확대해야”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작품이 적지 않고,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민망한 콘텐츠도 많지만 전문가들은 시장의 ‘자정 기능’에 의해 양질의 콘텐츠가 살아남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모습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당장은 기존 문단이 채팅형 소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겠지만, 과거 ‘칙릿’이나 ‘웹소설’도 저항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며 “관건은 콘텐츠 질에 대한 ‘상향 평준화’를 통해 10∼20대에 한정된 독자층을 폭넓게 확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평론가는 “출판 시장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실험을 해야 할 시기”라며 “과거 인터넷 소설 장르에서 인기를 얻은 ‘귀여니’ 사례처럼 채팅형 소설에서도 치열한 콘텐츠 경쟁에서 선택받은 스타가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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