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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22) 되는 것과 하는 것

직업·직책 등 ‘되는 것’은 높은 벽으로 인식… ‘하는 것’은 소수 아닌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생각
‘무엇이 되겠다’보다 ‘무엇을 하겠다’ 지향하는 젊은 세대의 자아실현 선호 현상 바람직


최근 미국 뉴욕대(NYU) 심리학과의 로즈(M Rhodes) 교수와 그녀의 동료들은 아동들을 대상으로 다수의 흥미로운 실험 연구를 수행해 그 결과를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등 저명 학술지에 발표했다.

다수의 연구에서 사용한 구체적 자극이나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들 연구의 주된 관심은 아동들에게 행동(action) 중심의 언어를 사용할 때와 정체성(identity) 중심의 언어를 사용할 때 아동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아동들에게 “과학을 해 봅시다!(Let’s do science!)”라고 얘기할 때(행동 중심 언어 사용 조건)와 “과학자가 돼 봅시다!(Let’s be scientists!)”라고 할 때(정체성 중심 언어 사용 조건), 어떤 조건에서 아동들이 과학적인 탐구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지를 알아본 것이다. “봉사를 합시다”와 “봉사자가 됩시다” 중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아이들이 더 지속적으로 남을 도울까. 즉, 무엇을 하는 것과 무엇이 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아이들을 더 움직이게 할까.

로즈 교수와 동료들이 발견한 일관된 결과는 무엇이 되는 것에 초점을 둔 집단보다 무엇을 하는 것에 초점을 둔 집단이 그 일에 더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한다는 점이다. 즉, “봉사자가 됩시다”나 “과학자가 됩시다”라는 표현보다 “봉사를 합시다”나 “과학을 합시다”라는 표현이 아동들에게 봉사활동이나 과학활동을 더 지속적으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얼핏 보면 ‘과학을 하는 것’이나 ‘과학자가 되는 것’은 비슷한 말로 들리지만, 이런 미묘한 언어적 표현의 차이가 아동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과학자’라고 하면 아동뿐 아니라 대부분 성인도 뭔가 특별하고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만이 과학자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과학자’라는 신분과 정체성은 하나의 범주(category)로 인식돼 이 집단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면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떤 직업이나 직책, 지위, 자격 등 명사(noun)로 된 신분이나 정체성에 대한 특별한 언어적 표현들은 오히려 그 ‘무엇이 하는 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 수 있으며, 특히 그 ‘무엇’에 속하는 특정 집단이나 성(性)이 소수일 때는 더욱 그럴 수 있다. 가령, 여성 과학자들이 소수인 사회에서 “과학자가 되자”란 표현은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더 많이 잃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을 하자”란 표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일이고, 새로운 발견을 하려는 노력이다. 머리가 비상한 소수만이 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학창 시절, ‘장래 희망’에 본인이 되고 싶은 직업을 썼던 기억이 있다. 장년층 이상의 대부분 독자는 장래 희망란에 자신이 되고 싶은 직업을 썼을 것이다. 과학자, 교사, 의사, 변호사, 기자, 방송국 PD, 공무원, 화가, 목사, 외교관, 간호사, 영화감독, 기업인, 가수, 은행원, 배우, 소설가, 건축가, 운동선수 등등.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그 ‘무엇’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아 열심히 뛰어다녔다. 무엇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하기 위해서 무엇이 되려는 것인지,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잊은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런 기성세대는 ‘무엇이 되려는’ 생각이 도무지 없어 보이는 자녀나 젊은 세대들을 보면, ‘개념 없이’ 사는 것이 아닌지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무엇이 되기’보다 ‘무엇을 하고 싶은’ 많은 젊은이가 보이고, 이런 젊은 친구들로부터 변화를 배운다.

필자가 학기 초마다 모든 수강생에게 제출하게 하는 한쪽 분량의 ‘자기소개서’에는 ‘장래 희망’을 적는 곳이 있는데, 20여 년 전의 대학생들과 요즘의 대학생들을 비교해보면 장래 희망에서 많은 변화를 보인다. 그 변화에는 원하는 직업이 새롭고 다양해졌다는 점도 있지만, 예전에는 장래 희망에 거의 모든 학생이 ‘무엇이 되겠다’는 것을 주로 적었다면 확실히 요즘은 ‘무엇을 하겠다’고 표현하는 대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

특정 직업을 얘기하기보다는 “창의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 디지털 시대에 취약한 장노년층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인간관계나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은 일을 찾아 전문적인 자문과 여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구호단체나 환경단체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도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아직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정하진 못했지만, 사회에 도움을 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감염병 등 질병 치료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하고 창업하고 싶다” “자급자족하는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연구하고 그 지식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다” 등등.

‘교수가 되는 것’과 교수가 하는 일, 즉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 중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는 좋은 교수를 선발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물론 대부분은 연구하고 가르치기 위해 교수가 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앞뒤가 바뀌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무엇’이 하는 일보다는 그 무엇의 지위와 명예를 위해 ‘무엇’이 되려고 한다.

요즘 여기저기서 대통령 출마자들이 나오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대통령은 그야말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며 그 벽의 높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통령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누구나 대통령의 지위를 가질 수는 없지만, 누구나 (대통령 취임 선서에 나오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지키거나 평화 통일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자유와 복리, 문화 창달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할 수 있다. 수많은 우리 국민이 대통령이 하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잘해왔고 이런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옳다. 대통령의 권한과 지위에만 관심을 두고 오직 대통령이 되는 것에만 목표를 둔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고 나면 이 일을 열심히 할 가능성도 작고, 임기가 끝나면 더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로즈 교수의 연구는 우리 사회에 ‘지도자가 되는 것’에서 소외된 많은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소위 지도자의 정체성이나 지위, 신분에 대한 이야기보다 지도자가 하는 일에 초점을 둬 이야기하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우리 방송 매체나 언론도 뛰어난 과학자나 예술가, 훌륭한 기업가나 정치인에게 초점을 둬 그 사람의 능력이나 인성 등을 주로 얘기해왔다. 만일 이들이 그동안 무엇을 해왔고, 이들의 주요 활동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둔다면 소외된 많은 젊은이가 용기를 얻어 비슷한 활동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더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지도자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비록 사소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고정관념과 편견의 틀에서 사람들의 사기와 의욕을 꺾을 수도 있고, 개방과 수용의 틀에서 발전을 지속시킬 힘도 갖고 있다.

과거 기성세대에게 인기 있었던 안정적이거나 보수가 높은 직장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나 자신의 성장과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일찍이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 Maslow·1908∼1970)는 인간의 동기나 욕구에 위계(hierarchy)가 있음을 제안한 바 있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식욕·수면욕 등)가 충족되면 다음으로 안전의 욕구가 생기고, 안전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그다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소속감의 욕구가 생기며, 이것이 충족되면 자존감의 욕구가 생기고, 최종적으로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대에 태어난 많은 사람은 먹고사는 문제, 안정적인 주거나 직장, 그리고 정부나 대기업과 같이 강한 조직에 소속되고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랑스러운 ‘무엇’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무엇이 됐다고 자아실현을 이룬 것은 아니다.

남들이 원하는 그 ‘무엇이 된’ 사람 중에는 여전히 자신이 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지 모른 채 혹은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아실현은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은 남이 아닌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 편견 없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잠재력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 자발적으로,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N포 세대’라는 비관적 신조어가 나오는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하지 못한 자아실현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은 없을까. 직위와 직책, 계약직과 정규직 등 소위 계급장을 떼고, ‘하는 것’만으로 평가받으며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젊은 세대들은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되는 것’보다 ‘하는 것’을 지향하는 변화의 바람도 이미 젊은 세대로부터 불어오고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시리즈 끝>


■ 용어설명

매슬로 욕구 이론과 자아실현 : 인간의 동기나 욕구에 위계가 있어, 하위 욕구가 충족돼야 점차 상위 욕구를 추구한다는 매슬로의 이론. 이에 따르면 인간은 가장 먼저 생리적인 욕구를 채우려 하고, 이게 충족되면 안전 욕구, 소속감 욕구, 자존감 욕구, 자아실현 욕구 순으로 옮겨간다.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는 흔히 ‘남들이 부러워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구로 여겨지지만, 그 무엇이 됐다고 자아실현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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