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노은님 작가의 개인전 ‘생명의 시작’ 전경.  노 작가는 “원시시대 벽화처럼 단순하고 순수한 그림에 생명의 기운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노은님 작가의 개인전 ‘생명의 시작’ 전경. 노 작가는 “원시시대 벽화처럼 단순하고 순수한 그림에 생명의 기운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 在獨화가 노은님 개인전

‘생명’ 초점 작품세계 한눈에
파독 간호사 출신 이력보다
작품 그 자체 집중해주길 바라

“개천서 고무신에 물고기 잡던
전주 어린 시절이 작품 바탕
살아있는 것에 대한 관심 깊어”


“글쎄요, 아이들 장난처럼 쉬워 보이니까 그럴까요.”

특유의 느릿한 말투에 겸연쩍음이 묻어났다. “당신 작품을 사람들이 왜 좋아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노은님(Eun Nim Ro·75) 작가의 답이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는 노 작가의 개인전 ‘생명의 시작: am Anfang’을 열고 있다. 오는 2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회화 31점을 선보인다.

독일 남서부 미헬슈타트 숲속 집에 거주하고 있는 노 작가와 지난 11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독일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지난 2019년 암 판정을 받고 힘든 시기를 겪었으나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그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산책 삼아서 집 근처 골프 코스를 혼자서 도는 것으로 건강 관리를 한다”고 전했다. 연못의 물고기들 밥을 주는 일도 중요한 일과이다. 그는 2019년 서울 전시 때처럼 고국에 가고 싶은데, 코로나19 탓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이번 전시와 관련, 가나아트 측은 특별한 의도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은님은 독일 미술계에 확실한 족적을 남긴 작가이다.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이 2019년 비독일 태생 작가로는 유일하게 그를 기리는 영구 전시관을 개관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국내엔 ‘파독 간호사 출신 작가’ 또는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물고기를 그리는 화가’와 같은 단편적인 이름으로 알려졌고, 그에 대한 국내의 미술사적 연구 또한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그의 초기작에서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생명’에 초점을 맞춰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노은님 작가가 지난 2019년 서울 전시회 때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노은님 작가가 지난 2019년 서울 전시회 때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이런 의도가 통한 것일까. 개막 전부터 수집가들의 구매 예약이 몰리더니 전시 초기에 31점 중 29점이 팔렸다. 노 작가를 오래 지켜봐 온 국내 미술계 지인들은 반색했다. 권준성 전 한솔문화재단 팀장은 “유럽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국내에서도 제대로 이뤄질 때가 됐다”고 했다.

노 작가의 인생행로가 워낙 이채로워서 작품에 대한 주목도를 흐려온 것이 사실이다. 1946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노 작가는 만 24세인 1970년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했다. 병원에서 일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는데, 이를 알아본 간호장의 주선으로 전시를 했다. 동료 간호사가 함부르크 국립미술대(HFBK) 교수였던 한스 티만을 소개했고, 1973년부터 6년간 HFBK에 재학하며 미술 공부를 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함부르크 쿤스트하우스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 등 당대 거장들과 함께 초대됐다. 이후 그는 유럽 주요 아트페어와 전시에서 주요 작가로 주목받았다. 한지에 그린 아크릴화, 설치미술, 퍼포먼스, 테라코타 조각, 심지어는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펼쳤다. 그는 홀로 건너온 이국에서 ‘고독과 함께 지내며 무거운 벌을 받는 사람처럼 지냈던’ 시절을 미술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1990년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 정교수로 임용돼 2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56세 때 같은 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였던 게르하르트 바르치와 결혼해 함께 살고 있다.

노은님, ‘소풍(Ausflug)’, Acrylic on paper, 78.5×143㎝, 2021.
노은님, ‘소풍(Ausflug)’, Acrylic on paper, 78.5×143㎝, 2021.

그는 평소 “전주의 어린 시절이 내 작품 세계의 바탕”이라고 말해왔다. 이날 통화에서도 노 작가는 전주에서 살며 산으로, 개천으로 놀러 다녔던 추억을 길게 되돌아봤다. “개천에서 고무신으로 물고기를 잡아왔어요. 그런데 내가 신을 잘못 움직여서 다 도망갔어요. 나 때문에 물고기들이 형제를 잃었다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고민했지요.”

그는 어린 시절의 고민을 웃지도 않고 전하며, “그때부터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고 했다. 그의 그림에서 순수의 시정(詩情)이 물씬 느껴지는 까닭을 알 수 있다.

노 작가는 단순한 선과 원초적인 색으로 고양이, 물고기, 새와 꽃 등의 자연물을 생생히 그려낸다. 이들 생명체에는 모두 점이 찍혀 있다. 생명의 기운을 시각화한 것으로, 그에 따르면 점은 눈(目)이다.

“언젠가 미국 샌프란시코 아쿠아리움에서 눈이 없는 물고기를 봤어요. 그때 내 그림의 물고기에도 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그려 넣기 시작했지요.”

원시적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의 색채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4원소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상 만물은 물, 불, 흙, 공기로 이뤄져 있다는 4원소론이 그의 그림에서 파란색, 빨간색, 밤색, 검은색 혹은 흰색으로 나타난다. 단순해 보이는 그림이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것이다.

유럽 미술계는 노 작가를 일컬어 ‘동양의 명상과 독일 표현주의가 만나는 다리’라고 한다. 동서양의 미술 세계가 그의 작품에 모두 녹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작품을 어떤 언어로 규정하기보다는 그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생명의 기운을 한껏 느껴주길 바라는 듯했다. 생명체가 탄생하는 순간을 묘사한 듯한 세 작품(1984, 1996, 2003년도 작)의 제목을 ‘무제’로 한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목을 붙이면, 사람들이 그것만 보려고 해요. 그걸 붙이지 않으면, 저 작품이 뭘 뜻할까, 궁금해서 찾아보지요. 아이들은 그걸 금방 알아냅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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