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

우리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멋쟁이 할아버지’라 불리셨습니다. 훤칠한 키에 멋들어진 백바지는 할아버지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장군 같은 눈썹을 휘날리며 우리 남매를 데리러 오시는 할아버지는 제 자랑이었고, 멋쟁이 할아버지가 오셨다고 떠드는 동네 사람들의 말소리는 으레 제 어깨를 으쓱하게 하곤 했습니다. 젊은 시절, 해병대 특수수색대에서 훈련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베트남전쟁 당시 제일 선두에서 싸우셨습니다. 목을 관통한 총알 자국과 배를 가로지른 칼자국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오셨는지를 보여주는 훈장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당신께서 살아오신 궂은 세월과는 다르게 할아버지는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매년 어린이날 토끼 같은 손주들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데려가 돈가스를 먹이는 것은 할아버지의 가장 큰 낙이었습니다. 명절날이 되면 항상 제 손을 꼭 잡고 전쟁에서의 무용담, 중동에 가서 일했던 때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인생의 교훈과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할아버지의 말씀들은 앞으로도 제 마음속 깊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행여나 제가 학교에서 상장이라도 받아오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그렇게나 저를 예뻐해 주셨습니다.

그런 우리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쓰러지셨습니다. 전쟁의 총성은 할아버지의 귀를 멀게 했고, 무자비하게 뿌려진 고엽제는 몸을 병들게 했습니다. 전장을 뛰어다니던 할아버지의 다리는 이제 뼈만 남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치매는 결국 할아버지의 기억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는 더 이상 제가 기억하던 장군 같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멋지고 강할 것 같았던 할아버지였는데 말입니다…. 앙상하게 마른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우는 것밖에, 저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온 힘을 다해 제 손을 잡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누구보다 강인했던 할아버지의 눈물을 그때 처음 봤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신 할아버지의 무용담은, 어쩌면 제 기억 속에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두렵습니다. 어쩌면 다시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을 수 없을까 봐, 멋쟁이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마냥 웃을 수 없을까 봐…. 부디 쾌차하셔서, 조금만 더 제 옆에 있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더 저를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손녀가 할아버지처럼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제발 조금만 더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우리 멋쟁이 할아버지!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손녀 조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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