督戰연설 같은 광복회장 기념사
국내 정치용 대한민국 비하·왜곡
잘못된 역사인식이 근본적 원인
2차대전 終戰 평화 빛 되찾은 날
한민족 해방일 대한민국 독립일
자유민주 평화통일 의지 다져야
올해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은 일제가 만든 구 서울역사(문화역서울284)에서 ‘길이 보전하세’라는 표어 아래 개최됐다. 일본을 향해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는 대통령 경축사에 비해 사전에 녹화해 방영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는 국내 정치용 독전(督戰) 연설처럼 들렸다. 차라리 고 김우전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다시 방영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주변 국가 일본과 중국은 패권과 대국주의를 앞세워 역사를 왜곡해 우리 민족을 압박해 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 문제가 우리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공존에 장애요인이 될까 지극히 염려스럽습니다… 새로운 남남의 갈등으로 국민의 편을 갈라놓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상생의 큰 정치로 민족의 번영과 조국의 통일에 대한 국민적 큰 기대를 잊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말씀드리옵니다.”(2004. 8. 15)
김원웅 회장은 대한민국을 “일제에 빌붙어 동족을 배반한 자들이 입법·사법·행정의 최고위직을 차지하는 나라”라고 비하했다. 또 “광복군 출신 이범석 총리 겸 국방장관은 8개월 만에 교체”됐다고 왜곡했다. 이범석은 국방장관을 그만둔 후에도 1950년 4월까지 대한민국 국무총리였다. 1952년에는 내무장관도 맡았다. 장공속죄(將功贖罪)했던 백선엽 장군을 비난하기 전에 이범석 장군부터 제대로 기념하기 바란다.
광복절에 국민 분열이 되풀이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잘못된 역사 인식에 있다. 제1 야당의 광복절 경축사도 온전한 역사인식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첫째, 8월 15일은 1945년 약 7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고하고, 평화의 빛을 되찾은 날이었다. 서유럽에서는 5월 8일, 러시아에서는 5월 9일을 전승일로 기념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9월 3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그러나 동서양이 함께 기념할 수 있는 날은 포츠담선언이 관철된 8월 15일이다. 이날은 전 세계 가톨릭 문화권에서 기념하는 성모승천축일이기도 하다. 세계평화의 날이 될 만하다.
1946년 8월 15일 선열들은 이날을 ‘8·15승리 및 해방기념일’로 기념했다. 우선, 연합국의 승리를 함께 기념한 것이다. 700만이 넘는 일본군과 맞서기 위해 결성된 약 300∼500명 광복군의 정신은 숭고했지만, 광복군이 일본군을 밀어내고 한반도를 해방시킨 것은 아니었다. 한·미 연합작전은 6·25전쟁 때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미 구상된 것이다.
둘째, 1945년 8월 15일은 한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직후 한반도에서는 ‘해방’이라는 용어를 많이 썼다. 6·25전쟁 이후 ‘해방’은 좌파적 용어라는 이유로 ‘광복’이 ‘해방’이라는 용어를 밀어낸 측면이 있다. 다시 ‘8·15승리 및 해방기념일’이라고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광복회의 독단적 기념일처럼 돼서는 안 된다.
셋째, 8월 15일은 1948년 대한민국이 독립한 날이다. 1949년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서 광복절은 1948년의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1949년에 제정된 광복절 노래에 나오는 ‘사십년’이란 일제 36년과 미군정 4년을 합산한 것이다.
해방 직후 대한인들은 신탁통치 구상에 맞서 새로운 독립운동을 전개했었다. 운동의 중심은 이승만과 김구가 협력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였다. 비록 김구와 김일성의 회담 이후 임정 세력 일부가 불참하기는 했지만, 1948년 5·10총선은 95%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제헌국회를 구성했다. 이 국회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확정됐고,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됐다. 1948년 8월 15일은 정부가 수립돼 미군정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음으로써 대한민국의 독립이 부분적으로나마 성취된 날이었다.
요컨대 8·15광복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통한 평화, 민족의 해방, 그리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함께 기념하는 날이다. 내년 8·15광복절에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세계와 함께 기념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해방을 희구하고 있는 피압박 민족들을 기억하고, 1948년 대한민국 독립 당시 미처 이룩하지 못한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의지를 새롭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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