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제약사 모더나와 백신 공급을 계약하면서 월별·분기별로 얼마의 물량을 들여오는지조차 약정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등 다른 나라와는 조건이 다른 ‘굴욕 계약’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백신 도입에 대한 구체적 계약 내용은 제약사와의 비밀 유지 협약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해왔다. 그러나 백신 수급 상황이 꼬여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17일 “모더나와 연내 도입 물량 4000만 회분은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만, 월별·분기별 구체적 공급 일정은 통상적으로 협의를 통해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의 방문단까지 보냈지만 성과가 없는 것도 애초 계약 자체가 불공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그동안 모더나가 포함된 월별·분기별 백신 공급량을 발표해왔다. 이달 중에는 모더나 백신 850만 회 분이 온다고 발표했는데, 실제로는 절반 이하만 온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백신 1, 2차 접종 간격도 2주가 늘어났지만, 어떤 영향이 있는지 설명도 부족하다. 백신 공급 부족으로 각국 정부가 제약사에 유리한 계약을 한 것은 맞지만, 문 정부는 문제가 더 크다. 미국이 모더나와 맺은 53쪽짜리 계약서에는 계약 규모·공급량·단가는 물론 구체적 수치는 가렸지만 시기별 도입량도 포함돼 있다. 유럽연합(EU)이 아스트라제네카와 맺은 공급 계약서에도 월별 공급량이 들어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의 신뢰다. 정부는 작년 말 문 대통령이 모더나 CEO와 화상 통화를 통해 4000만 회분을 확보했고, 공급 시기도 앞당기기로 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실상은 급하게 계약을 맺기 위해 오리무중 협상을 한 것이다. 불투명한 백신 정책은 국민 불신만 키운다. 코로나 방역·백신 정책에 대해 충분하고 정직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방역의 관건인 국민 신뢰·협력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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