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영화에 부는 ‘아시안 파워’

마블 새 히어로 무비 ‘샹치와…’주연 중국계 시무 리우 호평
11월 개봉하는 ‘이터널스’엔 제마 챈 · 마동석 큰 비중 맡아
박서준도 ‘캡틴마블 속편’ 캐스팅…‘아마데우스 조’役 예상

‘화이트 워싱’ 잇단 비판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성공 힘입어
아시안계 배우, 비호감 이웃·빌런 등 변방서 중심으로 이동


미국 할리우드에 아시안 슈퍼히어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마동석과 박서준을 비롯해 중국계인 시무 리우와 제마 챈 등 아시아 배우들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속속 합류하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 키 크고 잘생긴 백인 영웅들이 점령했던 메이저 히어로 무비에서 매우 의미 있는 변화다. 이는 사회·문화적인 관심이 차별받고 소외됐던 흑인과 여성에 이어 아시아로 향하는 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아시아 혐오 범죄가 불거진 북미의 현실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 변방에 머물던 아시아 배우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로 볼 때,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인은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1962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주인공 오드리 헵번과 조지 페파드를 성가시게 하는 일본인 이웃 주민이 대표적이다. 튀어나온 앞니에 작은 키, 소란스러운 행동 등 외모부터 비호감이었다. 그때는 웃음거리로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이라면 당장 인종차별적 묘사라고 지탄받을 만한 캐릭터였다.

아니면 ‘빌런’ 역할이 많았다. 냉전 시대의 소련이 무너지면서 주적이 사라진 자리에 아랍과 북한의 테러리스트가 등장했다. 차인표가 ‘007 언리미티드’(1999)에 캐스팅됐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묘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로부터 10년 후 한국의 톱스타 이병헌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에 출연했으나 역시 악역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시안은 수없이 많아도 그중 주연급에 캐스팅되는 아시아 배우는 1%에 불과했다. 이런 바늘구멍에서 아시아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아 성공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2018년 분위기가 바뀌었다. 흑인 히어로를 내세운 ‘블랙 팬서’와 온통 아시아 배우와 스태프로 이뤄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잇따라 흥행하고 이듬해 여성 히어로의 ‘캡틴 마블’까지 성공하면서 할리우드는 아시안에게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시무 리우, 마동석, 제마 챈, 박서준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마블의 새로운 히어로 무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9월 1일 개봉)의 시무 리우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유니버스의 네 번째 단계(Phase 4)의 세계관을 여는 첫 번째 작품이자 아시안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다. ‘텐 링즈’의 힘으로 어둠의 세계를 지배해 온 아버지와 암살자의 길을 거부한 히어로 샹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대결을 그리고 있다. 엄청난 돈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이고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첫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영화에 쏠린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과거였다면 지명도가 높은 백인 주인공이 동양인처럼 분장하고 출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블은 원작에 표현된 그대로 중국계 캐나다 배우 리우를 캐스팅했다. 그리고 량차오웨이(梁朝偉), 미셸 여, 아콰피나 등 중국계 아시아 배우들을 총출동시켰다. 심지어 연출자도 하와이 출신의 일본계 미국인 데스틴 대니얼 크리튼 감독을 선택했다.

오는 11월 개봉하는 마블의 새 히어로 시리즈 ‘이터널스’에는 마동석이 길가메시 역으로 나온다. ‘이터널스’는 수천 년에 걸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불멸의 히어로들이 ‘어벤져스: 엔드 게임’ 이후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적인 데비언츠에게 맞서기 위해 다시 힘을 합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리우드 최고의 톱스타 앤젤리나 졸리를 비롯해 리처드 매든, 쿠마일 난지아니, 셀마 헤이엑, 제마 챈 등이 출연한다.

제마 챈도 마동석과 함께 ‘이터널스’에서 눈여겨봐야 할 캐릭터다. ‘세르시’ 역의 챈은 개봉을 알리는 포스터에서 가장 맨 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만큼 역할이 큰 히어로인 셈이다. 최근 공개된 예고편에서도 전체 내레이션을 담당해 극 중 비중을 엿보게 했다. 아울러 이 작품의 연출자 역시 아시안인 중국계 클로이 자오 감독이다.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로 올해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쓸었다.

박서준은 영화 ‘더 마블스’에 캐스팅됐다. ‘더 마블스’는 ‘캡틴 마블’의 속편 격이다. 박서준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발 빠른 팬들은 박서준이 맡을 만한 캐릭터로 ‘아마데우스 조’를 점치고 있다. 아마데우스 조는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아시안 캐릭터 중 실제로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손꼽히는 두뇌의 소유자로서, 헐크 같은 힘을 지녔다.

마블의 새 시리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주인공 시무 리우(위 사진 오른쪽), ‘이터널스’의 아시안 히어로 마동석(아래 사진 왼쪽)과 제마 챈(아래 사진 오른쪽).
마블의 새 시리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주인공 시무 리우(위 사진 오른쪽), ‘이터널스’의 아시안 히어로 마동석(아래 사진 왼쪽)과 제마 챈(아래 사진 오른쪽).

◇왜? 아시안인가

그렇다면 변방에 머물던 아시아 배우들이 슈퍼히어로로 잇따라 발탁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앞서 지적했듯 소외되고 차별받는 존재였던 흑인과 여성, 아시안이 무대의 전면으로 나서게 된 사회적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백인 중심의 히어로물은 그동안 소재와 표현 방식에서 많은 한계에 부딪혔다. 아시안 캐릭터까지 백인이 하는 이른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은 큰 비판을 받았다. K-팝과 K-무비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아시안의 숨겨진 매력이 재조명되면서 아시안은 주변인을 벗어나 무대의 중심으로 도약했다.

이런 변화는 영화의 원작인 코믹북에서 먼저 일어났다.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는 지난 수년간 꾸준히 아시안 캐릭터를 각자의 유니버스에 추가해왔다. 마블 코믹스의 아마데우스 조, 실크, 미즈 마블, DC 코믹스의 카산드라 케인, 레이디 시바, 닥터 라이트 등 수많은 슈퍼히어로가 아이언맨·배트맨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외된 캐릭터의 성공을 확인하면서 할리우드는 아시안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도화선이 됐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100% 아시아계 배우들만 출연했는데도 미국에서 개봉 후 3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총제작비로 3000만 달러를 썼는데, 전 세계에서 2억3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넷플릭스의 로맨틱 코미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 주연의 스릴러 ‘서치’도 흥행에 성공했다. 마블은 이런 확신을 바탕으로 아시안 슈퍼히어로 영화의 제작을 추진했고, 그 첫 결과물인 ‘샹치’가 나온 것이다.

블룸버그는 ‘마블이 아시안 히어로에게 ‘블랙 팬서’의 성공을 요구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할리우드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처럼 자극적인 아시안 풍자가 영화의 필수 요소였던 이후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아직 더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 2007년에서 2019년 사이에 개봉된 1300편의 흥행 영화의 대사 있는 캐릭터 중 아시아인은 5.9%에 불과했다”며 “증오 및 극단주의 연구센터에 따르면 팬데믹 상황의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지난해에 비해 올해 1분기 164%나 급증했는데 이것이 ‘샹치’의 개봉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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