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기업 손잡고 ‘AI 의료기기 실무그룹’ 주도

세계시장 2023년 14조 전망
국내도 2464억… 5년새 6배

AI가 심정지 등 실시간 예측
고위험 환자 대비율 2배 높여

의료 빅데이터 등 개발 지원
2024년까지 280억원 투입

美 등 10개국과‘당국자포럼’
79건의 허가 등 리더십 발휘


분초를 다투는 심장정지 환자에게 인공지능(AI)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AI가 심장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호흡, 체온, 심장박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분석한다. 분석 결과 24시간 이내에 심장이 정지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면 의료진에게 긴급 경보, 의료진은 이러한 위험을 신속히 해결한다. 이는 실제로 AI 의료기기 업체 뷰노가 심장전문병원 세종병원과 함께 개발해 설치한 AI 의료기기 ‘이지스 시스템’의 작동방식이다. 이 시스템은 고위험 환자 예측도를 기존보다 2배 이상으로 높여 심정지를 사전에 대비하고 있다.

AI 의료기기는 의료용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질병을 진단 또는 관리하거나 예측, 의료인의 업무를 보조하는 장비다. 기존의 의료용 소프트웨어는 미리 정의된 알고리즘을 활용하지만, AI 의료기기는 학습데이터를 업데이트해 진단·예측 등의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변경되며,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적용해 의료기관 내외부에서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첨단 기술 발전으로 의료계에도 이처럼 AI를 활용한 의료기기가 속속 등장하면서 환자의 편의성이 높아지는 동시에 국내외 관련 산업 시장도 급속도로 성장 중이다. 이 가운데 우수한 정보기술(IT)과 풍부한 의료 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은 AI 의료기기의 국제 규제를 선도하면서 글로벌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정부 역시 AI 의료기기 관련 산업의 육성을 위해 각종 지원 및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AI 의료기기 =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헬스케어 산업이 확대되면서 국내외 AI 의료기기 시장은 2023년까지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 AI 헬스케어 시장은 지난 2018년 18억 달러(약 2조3000억 원)에서, 2023년이면 115억 달러(14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로 2018년 410억 원 규모의 시장이 2023년이면 2464억 원으로, 연평균 44.6% 성장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파른 성장세에 맞춰 전 세계 각국은 AI 의료기기 관련 규제 및 정책 등 제도적 기반을 경쟁적으로 개편·마련하고 있다. 우선 국내에선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한 부처 합동으로 범정부 ‘AI 국가전략’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AI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중 식약처는 AI 의료기기 전문 심사를 위한 ‘전문심사체계’를 구축하고, AI 의료기기 임상 검증용 표본 데이터를 개발하는 등의 정책을 진행해왔다. 닥터앤서(Dr. Answer) 2.0 등이 대표적이다. 의료빅데이터를 통해 의사의 진단·치료를 지원해 주는 AI 서비스로 폐렴, 간 질환 등 25개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2024년까지 28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해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AI 의료기기 등 디지털헬스 사전인증(Pre-Cert) 프로그램 운영에 앞서 있다. 이는 품질과 조직의 우수성이 입증된 기업에서 AI 등이 접목된 의료 소프트웨어를 출시할 때, 시판 후 모니터링에 노력하는 경우 해당 기업에 대해 효율적이고 간소화된 ‘사전인증’ 프레임을 적용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삼성과 애플, 구글 등 대기업 3개사를 비롯해 의료기기·제약사 분야의 존슨앤드존슨, 로슈가 포함됐다. 또 스타트업의 핏빗, 테라퓨릭스, 포스포러스, 비영리법인 타이드풀 등 총 9개사가 참여한다. 간소화된 사전인증 프로그램 심사만으로 제품의 안전성·유효성 검토가 가능하며, 기존 미국 식품의약국(FDA) 심사방식을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 표준 선도 본격화 = 한국은 국제 AI 의료기기 규제를 표준화하고 주도하는 단계에 와 있다. 국제 사회에는 의료기기 사전·사후 전주기에 대한 국제 규제 조화 및 단일화를 촉진하기 위해 구성된 선진 10개국 규제 당국자 간 협의체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nternational Medical Device Regulatory Forum·IMDRF)’이 있다. 한국을 비롯해 호주, 브라질, 캐나다,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러시아, 싱가포르, 미국 등 10개 국가, 세계보건기구(WHO) 등 3개 단체 총 45명으로 실무그룹이 운영된다. 이곳에서 한국은 IMDRF의 AI 의료기기 국제 공통 가이드라인 개발을 위한 실무그룹 신설을 제안한 데 이어 초대 의장으로 선임됐다. 정부는 2019년 9월 ‘AI 의료기기’ 실무그룹 제안을 위해 회원국 협회에 국내 가이드라인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 회원국과의 개별 접촉을 통해 실무그룹 구성을 협의했다. 미국 등에서 WHO 업무와 중복된다는 이유 등의 반대로 한국의 실무그룹 의장 수행 승인이 보류되기도 했지만, 꾸준한 보완 절차를 통해 2000년 6월 실무그룹 설립을 국제사회에 승인받았다. 이를 통해 AI 의료기기 정의, 적용대상, 주요 용어, 국제 가이드라인 등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규 실무그룹의 승인은 한국의 AI 의료기기 산업은 물론 규제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로 평가된다. 이미 2017년 한국은 세계 최초로 AI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발간한 데 이어, 현재 79건의 AI 의료기기 허가 등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또 한국 주도의 의료기기 국제 규제 조화 추진으로 국제적 신인도 향상은 물론 국내 관련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기여로 한국의 국가 위상도 제고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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