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 하면 법치가 아니라 ‘법에 의한 통치’가 되듯이, 언론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반대로 언론 행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론 관련 법 규제는 더 신중하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어떤 법도 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언론 관련 법 규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 나라들에서 언론 관련 법 제정은 꽤 오랜 시간의 논의와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다.
그러므로 정부·여당이 언론 개혁을 명분으로 강행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지극히 잘못된 반(反)민주적 폭력에 가깝다. 그 내용이 어떤 전례도 찾아볼 수 없는 강한 규제 법안이기 때문이다. 통상, 법 제정을 위해서는 ‘내용의 정당성’ ‘절차적 정당성’과 함께 입법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은 이 중 어떤 요건도 충족하지 못했다.
우선, 내용적으로 법 개정안은 언론 책임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악의적·고의적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강한 규제 조항을 추가했다. 원래 언론중재법은 보도 내용으로 인한 언론과 수용자 간의 법적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지원법이지 규제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육성지원법에 처벌 규정을 넣어 도리어 더 위축시키는 것과 같다. 더구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내용이 언론사 존립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매우 강하다. 이는 언론의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넘어 감시 기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도 있다. 물론 가짜 뉴스나 고의적 오보가 줄어들 수 있겠지만, 이보다는 언론의 ‘자기검열(self-censoring)’ 효과가 훨씬 더 클 수 있다.
절차적 정당성은 더욱 취약하다. 내용적 정당성을 담보하기 힘든 언론 관련 법은 절차적 정당성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도 2년 가까운 코로나19 사태로 민생이 파탄 직전인데도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없이 법 제정을 강행하려 한다. 이렇게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입법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법이 제정돼 당장 이득을 볼 대상이 누구일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언론의 주요 감시 대상은 당연히 정치적·경제적 권력이다. 당연히 언론을 가장 두려워할 집단도 권력형 부패, 법을 무시한 정책 결정과 실패와 연관된 집단들이다.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들어서면서 이런 이슈들이 선거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고 언론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은 현 정권에서 추진됐던 정책과 비리 의혹들이 주된 쟁점이 될 것이다. 여당 입장에서 이 쟁점들이 부각되면 불리할 게 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불리한 선거 쟁점들에 대한 미디어 어젠다를 봉쇄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내용적 정당성도 담보되지 않은 법을 절차적 정당성도 포기하면서 추진하는 배경에는 이런 정략적 목적이 있을 것이다. 나쁜 뉴스로부터 국민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법이 되레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면 그건 나쁜 법이다. 이런 의도를 모를 줄 알고 입법을 강행하는 이들은 민주주의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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