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많은 개발도상국은 경제개발에 매진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개도국이 두 가지 형태의 ‘억압(repression)’에 시달려 왔다. 권위주의 정부에 의한 ‘정치적 억압’과, 관치금융에 의한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억압에서 벗어나 ‘정치적 자유’와 ‘금융 자유화’를 이룩한 유일한 민주국가로 칭송받아 온 대한민국이 이제 ‘금융 억압’의 굴레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농협중앙회에 전국 지역농협에서 준조합원과 비조합원에게 대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은행권에 이어 저축은행 업계도 신용대출 한도를 대출자의 연소득 이내로 제한할 방침이다. 지난주 농협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 제한 조치에 이어 신용대출 한도 조치는 임대주택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자유와 평등을 정부가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금융 억압’을 자행하는 것이다.
시행한 지 1년을 맞은 ‘개정 주택임대차 보호법’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파산에 이르게 하고 말았다. 새 임대차법 이후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자료:KB부동산)는 2020년 7월 4억9922만 원에서 올해 7월에는 6억3483만 원으로 1년 만에 27.2%가 뛰었다. 한국부동산원도 같은 기간 전국의 아파트 전셋값은 10.26% 상승할 것으로 추계했으며, 법 개정 직전 1년 동안의 상승 폭(2.18%)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높게 뛴 셈이다.
제1, 2금융권에 대한 대출 규제의 목표는, 정부가 파산에 이른 부동산시장을 ‘금융 억압’으로 정상화해 보겠다는 과욕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 억압’의 정책이 부동산 가격을 더욱 앙등시킬 것이며, 2년 가까이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로 이중고를 겪는 실업자와 자영업자 및 임대계약자들에게 치명타를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금융부채를 안고 있어 원리금 부담이 가중되고 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제2금융권에서도 쫓겨나 고율의 이자율을 물어야 하는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지난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28만70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0.7% 줄었으며 물가상승률을 차감한 실질소득은 3.0% 줄었다고 한다. 이러한 월평균 소득 감소는 소득하위 20%의 경우 (-)6.3%에 이른다. 한편, 하위 20%의 가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6% 늘었다고 한다. 결국, 하위 20%의 가구는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고, 이들에 대한 대출 규제는 이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조치에 불과하다.
문제는, 현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내년 3월 대선 전에 만회해 보려는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대출을 규제하면 민간주택 공급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고, 주택 임대차시장은 서민 임차인들에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리처드 파이프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소유와 자유’에서 지나친 평등주의가 자유는 물론 평등도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부동산 값 앙등→임대차시장 개입→금융 규제’로 이어진 정책 실패의 순환 고리는 결국 반서민 정책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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