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해오름극장 재개관 기념작품 작사한 이어령 前장관

암 투병 중 수차례 설득에 수락
반주 63·합창 59명 대합창곡
5악장에 한국인 恨과 興 담아

“아리랑 부를때 한국인은 하나
극장이야말로 창조의 동굴”


“동굴 속에서 잠자는 ‘곰’과 바위에서 포효하는 ‘호랑이’가 한데 어울린 것이 한국 소리의 특성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자 석학인 이어령(88·사진) 전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내달 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되는 합창곡 ‘천년의 노래, 리버스(rebirth)’의 작사가로 참여한다. 약 4년간의 리모델링을 완료한 해오름극장 재개관을 기념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작품으로 곰이 웅녀로 변신하는 단군신화 모티브에 ‘아리랑’의 노랫말과 정서를 접목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던 이 전 장관은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취임 후 ‘10세 신동’이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의 국내 데뷔를 마련하는 등 음악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음악 작업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암 투병 중인 그는 처음엔 제안을 거절했으나 다섯 번에 걸친 요청 끝에 수락했다고 한다.

‘천년의 노래, 리버스’는 국악계에서 보기 드문 대편성 합창곡이다. 63인조 국립국악관현악단 반주에 국립합창단원 59명이 독특한 화음을 만든다. 협연자로는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의 멤버인 테너 존 노가 나선다. 이 전 장관이 한국인의 사상적 원형으로 지목한 단군설화 속 ‘신시(神市)’, 삶의 자세로 강조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등이 5악장으로 구성된 곡에 담겼다. 고요한 화음이 흐르는 첫 장 ‘신시의 아침’부터 희망을 품은 ‘노래여, 천년의 노래여’로 끝맺는 곡은 한국인 특유의 한(恨)과 흥(興)을 실어나른다. 이 전 장관은 작사 의도에 대해 “한국 문학과 한국인, 한국 문화의 원형을 한국의 소리로 옮기고자 했다”며 “어두울수록 아침 햇살이 빛나듯이 ‘한의 아리랑’은 곧 ‘신바람의 아리랑’이 된다”고 설명했다. “아리랑을 부를 때 한국인은 한국인이 됩니다. 시대가 바뀌고 풍속이 달라져도 아리랑을 부를 때 한국인은 하나가 됩니다. ‘천 리의 강물’처럼 흐르는 아리랑 앞에 낯선 사람은 없습니다.”

이 전 장관은 해오름극장 재개관을 축하하는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한밤의 어둠이 있어야 해오름의 햇살이 있고, 동굴의 암흑이 있어야 야생의 짐승이 아리따운 여인으로 환생하는 ‘신시’의 아침이 있듯이 극장이야말로 인간의 영혼과 예술을 탄생시키는 창조의 동굴”이라며 “많은 고통의 밤을 지나 해오름극장이 다시 열리는 이 아침노을에 축하의 잔을 올린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해오름극장 재개관 기념 무대엔 작곡가 나효신이 쓴 ‘저 소나무처럼’도 선보인다. 동서양 약기를 접목해 현대음악의 새 지평을 연 작곡가의 장기가 발휘된 작품이다. 이와 함께 작곡가 최지혜가 판소리의 한 대목을 골라 관현악곡으로 바꾼 ‘흥보가 중 박 타는 대목’도 안숙선 명창의 소리로 만날 수 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