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향 ‘바보처럼 살았군요’

앞줄엔 가급적 희망의 시가 적당하다.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조병화 시 ‘의자’ 중). 어둠이 아침에 자리를 비워주는 건 미덕이자 섭리다. 현실에서도 그럴까. ‘사람 없어 비워둔 의자는 없더라’(김용만 ‘회전의자’ 중). 그래서 노래는 현실적 조언 내지 조롱으로 끝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빈자리가 많아지면 억울함이 줄어들까.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한 빈자리는 위험한 싱크홀로 남는다. ‘가버린 날들이 돌아올 수 없듯이/ 다시 메울 수 없는 내 맘의 빈자리여’(최백호 ‘빈자리’ 중). 갈 곳이 많아 골라서 갈 지경이 되면 그때는 태평성대다. ‘두 사람이 와도 괜찮소/ 세 사람이 와도 괜찮소’(장재남 ‘빈 의자’ 중). 정년퇴직이 없는 음악동네에서도 신입사원을 채용하는데 그 과정을 우리는 오디션이라고 부른다. 오디션은 출세의 지름길일까.

출세엔 보통 두 가지 뜻이 있다.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이 하나, 숨어 살던 사람이 세상에 나옴이 둘이다.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가수’(KBS 2TV)는 두 번째 출세를 지향한다. 만약에 순서를 바꿔 ‘우리가 사랑한 그 가수 새노래’라면 어떨까. 신곡 발표회는 이른바 그 가수의 ‘찐팬’이 아니면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다. 신곡보다 선곡, 즉 친숙한 가수의 새 노래보다는 처음 보는 가수의 친숙한 노래가 오디션 시청률의 관건이다. ‘오래전에 함께 듣던 노래가/ 발걸음을 다시 멈춰 서게 해’(스탠딩 에그 ‘오래된 노래’ 중).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대기석에선 긴장과 웃음이 교차하지만 그것이 지속가능한 풍경은 아니다. 전국에서 노래 한가락 한다는 재주꾼들이 모였지만 행운이 모두에게 호의적이진 않다. 경연이 진행되면서 누구는 계속 자리에 머물고 누구는 짐을 챙긴다. 딱히 노래를 잘못해서라기보다 노래를 잘못 골랐다는 이유가 출연자의 진퇴를 가르기도 한다. 그들의 등장과 퇴장에서 인생의 단면을 엿보는 건 덤이다.

오디션 연출가는 출연자보다 심사위원을 엄선해야 한다. 시청자가 느끼는 걸 대신 말해주는 정도를 넘어서 시청자가 놓치거나 눈치 못 챈 걸 끄집어내 줄 감별력이 필요하다. 오디션 심사는 일종의 ‘사랑과 전쟁’이다. 주례와 판사는 한 명씩으로 충분하지만 검사와 변호사는 비슷한 숫자로 포진하는 게 공정하다. 배심원은 방구석 1열에 착석한다.

‘새가수’를 뽑는 심사석에 앉은 ‘3철’이 눈에 들어온다. 맏형 배철수는 중심 잡기로 제격이다. 이승철은 검사, 김현철은 변호사 역할에 어울린다. 완곡어법이긴 하지만 ‘착한 게 마음에 안 든다, 너무 올바른 느낌이다’라는 평은 검사 측에서 나왔다. 그는 악보대로 성실히 부르는 모범생보다 악상을 멋대로 요리하는 모험생에게 점수를 더 준다.

지난 21일 방송분에선 ‘새가수’ 박산희와 임연이 주목받았다. 그들은 각각 시인과 촌장의 ‘고양이’와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열창했다. 김현철의 심사평이 특별했다. ‘원곡에서는 고양이를 관찰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인데 이 무대에선 고양이가 고양이를 불렀다’고 평했다. 관록이 엿보이는 심사평이다. 출산을 앞둔 임연에 대해 이승철은 ‘인생의 마일리지가 느껴진다’면서도 ‘보이스가 너무 청주 같다. 막걸리 같은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평한 반면 김현철은 ‘오히려 목소리가 맑기 때문에 나는 더 좋았다’고 반격(?)했다. 둘 중 누구도 바보처럼 보이지 않았던 건, 주장하며 성내지 않고 서로 웃으며 존중했기 때문이다.

가을이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중략)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김도향 ‘바보처럼 살았군요’ 중). 누구나 그 자리에 갈 필요는 없다. 제자리에 가면 된다. 남을 속이지 않으면 바보의 자리도 아름답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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