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공룡 둘리’ 김수정 작가
21년만에 신작 ‘사망유희’ 출간
“오랜만에 본업 복귀… 두려웠죠
PC 아닌 종이·펜·붓으로 그려
삶·죽음 소재로 한 ‘삐끕 만화’”
“‘아기 공룡 둘리’를 비롯해 기존의 내 작품들은 대체로 유쾌한 만화였습니다. 그런데 삶이 늘 유쾌한 건 아니잖아요? 유쾌함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은 슬픔일 수도, 아픔일 수도, 또 다른 사연일 수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21년 만의 신작 만화 ‘사망유희(둘리나라)’로 돌아온 김수정(위 사진) 작가는 30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만화 인생에서 이번 신작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번엔 4개의 단편을 묶어 ‘사망유희’로 펴냈지만, 마음속에 담아 온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내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아기 공룡 둘리’의 TV 애니메이션 제작, 소설 집필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던 김 작가가 ‘본업’인 만화로 복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좀 두려웠어요. 오랜만에 작업하다 보니 스토리를 만화로 풀어내는 감각이 무뎌지고 독자들과의 거리감도 느껴지고. 작업 도중 나 자신에게 실망도 많이 했죠. 그런데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손도 풀리고, 차기 작품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 생겼어요.”
컴퓨터와 태블릿 PC가 종이와 펜, 붓의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지만, 김 작가는 예전 방식 그대로 작업했다고 한다. 여전히 종이에 스케치하고, 펜 터치를 하고, 물을 듬뿍 묻혀 색깔을 입히는 데 익숙한 까닭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사망유희(四亡遊戱)’는 사후 세계 등을 소재로 한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어둠의 느와르’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주인공이 죽음의 요정을 만나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귀신되기 잘했다’(큰 사진)에는 구천을 떠돌면서도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희구하는 귀신들이 등장한다. ‘장밋빛 인생’은 거액 재산가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실종을 둘러싼 소동을 유쾌하게 그렸다. ‘너 죽으면 어디로 갈거나’는 집에서 학대받는 어린 소녀, 이 소녀를 학대한 계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 작가가 복귀작을 통해 제시한 화두는 죽음이지만, 이는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삶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죽음이 있기 때문이고,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처럼,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죽음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잖아요.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죠. ‘너 죽으면 어디로 갈거나’만 해도 성인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폭력을 다뤘는데, 힘 있는 갑(甲)의 입장에서 행한 일들을 돌아보고 반성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김 작가는 ‘아기 공룡 둘리’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우여곡절 끝에 무산되고 만 것이 내심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준비했던 각본을 되살려 단행본 만화책으로 펴내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머지않아 새로운 둘리 시리즈의 후속편이 나온다는 얘기다.
‘사망유희’에 대해 김 작가는 스스로 ‘삐끕(B급) 만화’라고 규정했다. 자신을 포함해 한국 만화 작가들은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검열 속에 작업해 왔는데, 이번 작품에 임하면서 그런 데서 좀 벗어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내 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번엔 사실 제대로 된 삐끕 만화는 못 그린 것 같아요. 평생 나를 옥죈 규제의 사슬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앞으로 계속 노력할 생각이에요. 작품 속에도 꼭 A급만이 아닌 ‘삐끕 인생’들도 많이 녹여내고 싶습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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