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웅(1940∼2007) 장춘식(1944∼2020)
지금에야 흔하디흔한 과일이 됐지만 어린 시절 바나나는 쉽게 접할 수 없던 귀한 먹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약주를 드신 날이면 어디선가 바나나를 구해오셔서 바나나 속살만큼이나 달콤한 잠에 빠져 있던 우리 자매를 깨워 잠결에라도 맛을 보게 하셨죠. 다음 날 바나나 껍질로 장난을 치다 부모님에게 혼난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따뜻한 한마디 말보다는, 비닐봉지에 담은 바나나를 불쑥 내밀던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셨습니다. 작은 신발 고무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꼼꼼하지 못한 성격으로 사업에 구멍이 생기자 가족 모두가 공장 운영에 매달렸고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으로 공장의 톱니바퀴가 겨우 돌아갔습니다.
생존을 위한 바쁜 생활 속에서 이제는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의 기억조차 흐릿합니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부모님과 함께 누렸던 작은 행복과 철없던 즐거움마저 이제는 어렴풋하게 사라져 가고 있네요. 대전 시립공원 묘지 잔디에 나란히 누워계시는 부모님께서는 이제 공장 걱정, 자식 걱정 더는 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못했던 정을 나누고 계시겠죠!
고된 역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나아가며 힘든 모습을 숨기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그때 한 치라도 헤아릴 수 있었다면 지금 가슴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은 힘든 암과의 싸움, 그리고 포기의 연속이었습니다. 무기력하게 가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리지 못했던 죄책감이 어느새 흘러간 세월의 무게보다도 커져 버렸습니다.
깊은 신앙심으로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어머니, 정작 당신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으셨고 가족과 주변 이웃 모두를 위해 사셨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셨던 작은 여장부셨습니다. 누구보다 강한 어머니, 좋은 옷을 입고 예쁘게 꾸미고 싶은 여자로서의 욕심을 접고 모든 우선순위를 가족에 두고 베풀기만 하셨던 사랑과 희생의 가치를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걸어오셨던 모질고 힘들었던 삶 위에 서서 여전히 이기적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거울 속의 제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모두를 사랑과 포용으로 감싸 안으시다 떠나가신 부모님, 당신의 선한 아름다움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큰딸 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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