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정치부 차장

언론 자유를 훼손하는 내용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며 벌어진 대치 정국에서 정의당이 ‘야성(野性)’을 유감없이 보이고 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2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의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말을 인용하며 “언론을 입막음하려는 정부·여당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이 상황을 자성하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말고 국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청하는 등 원내·외에서 입법 저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반에도 정의당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이른바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린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상당수의 인사가 사퇴하거나 지명철회 됐다. 여소야대라는 구조적 요인도 소수 야당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었던 이유이기는 하나, 데스노트가 주목을 받은 건 정의당의 판단이 국민의 눈높이, 국민의 상식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정의당이 ‘데스노트’와 관련해 올린 영상에서 정호진 당시 대변인은 “다른 정당과 비교해 (국민 정서와) 공감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는 정의당이 ‘정의당다움’을 상실하는 분기점이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목표로 했던 정의당은 2019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민주당과 적극적으로 공조했고, “사법개혁의 대의 차원에서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겠다”며 조 전 장관 임명에 찬성했다. 이어 공직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2중대’ 역할에 충실했다. 선택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정의당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탈당하는 등 분란을 겪었고, 양대 정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21대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하겠다던 목표와는 달리 20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진보정당이 뿌리내린 역사를 돌아보면 정의당의 길은 분명하다. 진보 세력은 권영길 정의당 상임고문이 제15, 16대 대통령선거를 완주하면서 제도 정치권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유권자는 두 차례 대선을 통해 중요한 정치세력이라고 인식하게 됐고, 민주노동당은 17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이라는 꿈을 이뤘다. 권 고문을 향해 쏟아졌던 ‘김대중, 노무현 후보의 표를 분산해 보수 진영을 돕는다’는 비난을 극복한 결과다.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당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정의당은 언론중재법 이전에도 조 전 장관 사태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장혜영·류호정 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을 거부하며 피해자의 편에 섰다. 조 전 장관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되자 정의당에서는 상식적인 결정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 총선 후 한 정의당 관계자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라는 개혁을 포기할 수 없어서 조 전 장관 문제에 정의당의 기준과 다른 선택을 했다”며 반성했다.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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