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은 금잔에 담겨 나오는 법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가 제정해 1987년 민주화로 폐지될 때까지 언론탄압의 도구로 이용됐던 언론기본법도 그랬다. 언론 통폐합은 ‘건전한 언론의 육성과 발전을 위한 언론개혁’으로 미화됐고, 언론의 자유 말살은 ‘언론의 공적 책임 강화’로 포장됐다. 언론인은 공익을 대변한다는 윤리 규정과, 언론은 공표 전에 모든 공표 사항의 진실성, 내용 및 출처에 관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언론의 주의 의무도 신설됐다.
인간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모두 써 가는 것이 역사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2년간 4만50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조사를 거쳐 언론 통폐합의 진상을 규명했는데, 불행한 역사의 교훈을 벌써 잊은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군사정권 시절보다 더 개악된 ‘제2의 언론기본법’이다. 언론기본법 제7조의 위법한 표현물의 압수 규정은 인터넷 기사의 열람차단청구권으로 부활했고, 제53조의 편집인 등의 형사책임 규정은 고의·중과실 추정에 의한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민주주의를 시험하는 기준은 다수의 지배에 대한 승인과 소수의 권리다. 다수의 지배권리는 이에 대립하고 투쟁하는 소수의 권리와 조화를 이룰 때 정당화된다. 정권을 장악한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의 능력은 열린 정부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심장이다. 그 박동을 멎게 하거나 속도를 늦추게 하는 어떤 시도도 민주주의의 적(敵)이고, 용납돼서는 안 된다. 실패한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정착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촛불혁명 정신의 실체가 전 세계가 비판하고 나선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라면 문재인 정권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정치개혁과 국가개혁의 열망을 담아 180석 절대다수 의석을 만들어준 국민에 대한 보답이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정권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었는가.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소신을 보지 말고 그 소신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보라 했다. 믿음의 합리성 같은 것은 없고 행동의 합리성만 있을 뿐이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한 토머스 제퍼슨은 “국민이 통제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이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언론의 자유다. 법의 지배는 결코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한 입법의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기능하지 않는 것이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강행 처리는 5공 군사정권의 언론기본법 시절로 역사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대중을 유혹하고, 언론을 침묵시키고, 사법부를 위협하고, 모든 반대자를 제거하는 것은 파시즘의 속성이다. 자유로운 정부만이 강한 자는 공정하게, 약한 자는 존중받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상을 잊는 순간, 민주주의가 실패한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지켜야 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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