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실, ‘엉망이 된 시간, 뒤엉킨 공간’, 장지에 수묵 채색, 244×540㎝, 2021
이은실, ‘엉망이 된 시간, 뒤엉킨 공간’, 장지에 수묵 채색, 244×540㎝, 2021
기다리던 첫 손녀의 탄생 소식으로 들뜬 하루다. 세상에 나온 아기가 맞은 첫날 밤, 평온하게 잠든 모습에서 천사가 보인다. 예쁜 이름을 지어야겠다. 세계를 향해 처음으로 반응할 자아(ego)의 거울 말이다. 세상이 기대하는 바를 자신의 모습으로 여기고 그에 걸맞게 살아가야 할 거울 같은 이름.

하지만 화가 이은실의 그림을 보노라면 이런 감동과 기쁨도 잠시 유예해야 한다. 세상은 천의 얼굴을 하고 요람의 턱밑까지 와 있다. 자아가 직면한 세상은 행복도 주지만 아픔도 준다. 현실에서 욕구는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는데, 작가는 그 좌절과 불안의 내면을 투시도로 보여준다.

자기공명영상(MRI)보다 더 리얼한 대뇌 형상들이 변형에 직면해 있는 우리 욕망의 초상이다. 자아와 세계 사이에 안전한 벽을 만들어준 욕망의 건축술이 그 구조를 지탱해내지 못하는 시간이다. 다행인 것은 광대무변의 자연 속에 이런 변형은 그저 조약돌보다 작다는 것이다. 당신의 분열증세, 자연 속 호연지기가 평정하리라.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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