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DGIST 석좌교수 커뮤니케이션학

균형(balance)은 만물이 안정감 있게 살아남는 필수 조건이다. 정지 상태에서 몸체(body)를 유지할 때보다, 위험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행위(step)를 할 때,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고 어렵기도 하다. 격투기의 겨루기나 남사당패의 줄타기에서 보듯이 가만히 있을 때보다 스텝을 밟기 시작할 때 균형 잡기가 아슬아슬한 이유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과 국가가 닥쳐오는 위험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아슬아슬한 줄타기 스텝이다. 독재국가는 국민의 스텝마저 가만히 서 있는 몸체처럼 묶어 두려 하기 때문에 어떤 위험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고, 종국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비교적 강건하게 유지하고 자랑해 온 균형 잡힌 줄타기 놀이에서 급작스럽게 굴러떨어지는 중이다.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를 흔드는 데 이명박 정부의 꼼수정치와 정보기관의 불법은 크게 기여하지 않았는가? 박근혜 정부의 이념 편향적인 국정교과서와 블랙리스트, 구중궁궐의 국정농단은 못지않게 기여하지 않았는가? 그런 전적(前績)에 대해서 야당은 연일 사과하고, 새로 태어나도 부족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어떤 희망과 믿음도 주지 못했고, 결국 국민은 1년 전 4·15총선에서 여당에 압도적인 180석을 몰아주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작금의 국정농단은 누구에게 원초적 책임이 있는가?

입법기관의 절대다수가 여당 의원으로 채워지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줄타기가 위험에 빠지는 건 뻔한 일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스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법·사법·행정 간의 견제와 균형, 또 그것을 뒤받쳐주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국회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가장 먼저 위협받은 것은 표현의 자유였다. 지난해 12월, 2개 법안의 통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시발점이었다. ‘대북전단금지법’과 ‘5·18왜곡처벌법’이다. 전자는 지구촌의 자유세계 옹호를 부정하는 것이며, 후자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5·18민주화운동 정신 자체를 모욕하는 것이다.

급기야 공인(公人)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검찰의 형사피의자 정보공개 규제를 강화했고, 나아가 ‘언론의 자유’를 크게 훼손하는 이른바 ‘언론중재법 개정안’까지 처리하기 직전이다. 균형이 깨진 입법기관의 독주는 결국 자유민주주의의 스텝마저 균형이 무너지게 하고 있다. 국민이 보기에, 진기한 일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의 수장을 지낸 두 사람이, 도대체 어떤 국정농단을 체험했기에, 보스를 배반하고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겠느냐이다.

언론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찾아서 판매하는 비즈니스다. 그래서 사회가 정화(淨化)되고, 국민이 겪을 더 큰 불행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만큼, 사회적 정화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국민의 불행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을 부르짖은 문 정부가 가장 큰 적폐를 새로이 만들기 전에, 아니 전 자유세계에 엄청난 실망을 안기기 전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폐기하는 게 옳다. 자유민주주의의 ‘줄타기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3류 독재국가로 전락할 수 있음에 소름이 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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