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스승에게 바치는 레퀴엠 작곡
초연때 극찬 받으며 작곡가로
익명 콩쿠르서 賞 혼자 싹쓸이

히로시마 희생자 애가로 명성
9·11 기리는 피아노 협주곡도


1991년, 당시 문화부 장관을 지내던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폴란드 음악 대통령’이라 불리는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933∼2020)를 한국에 초청했다. 이유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교향곡의 위촉을 위해서였다. 펜데레츠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작곡가이긴 하지만 사실 일본 히로시마(廣島)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한 작품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哀歌)’로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이 전 장관이 그런 그를 위촉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이후 음악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가 한국의 희생자를 위한 작품을 작곡한다면 우리의 이야기가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일제강점기를 비롯해 이름 없이 스러져간, 한국인을 위한 레퀴엠(진혼곡)을 써주셔야만 합니다.” 이번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한국을 위한 작품을 써 달라는 이 전 장관의 설득에 펜데레츠키는 의뢰를 수락했고 곧장 서울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한국의 선율이나 가락들을 연구하고 수집하는 대신 남대문시장 등을 돌며 한국의 모습과 정서, 색채와 뉘앙스를 눈과 귀,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작업에 착수한 지 9개월 만에 교향곡 ‘한국’을 완성했다.

펜데레츠키는 폴란드의 남부 뎅비차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진 못했고 대부분 유년시절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자랐다. 전쟁이 끝나고 바이올린을 접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음과 음악에 대한 몰입을 체험하게 됐다. 원래 해군장교가 꿈이었던 그는 진로를 변경해 18세가 되던 해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크라쿠프음악원에 입학했다.

그의 음악적 열정은 바이올린에서 작곡으로 옮겨가게 된다. 펜데레츠키는 아르투르 말라프스키에게 작곡을 사사하게 되는데 스승은 만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때 펜데레츠키는 스승을 위한 레퀴엠을 작곡했고, 1958년 크라쿠프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됐는데 극찬을 받으며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듬해인 1959년 폴란드 음악계가 들썩이는 사태가 일어난다. 폴란드작곡가협회가 주최하는 콩쿠르에서 한 명의 출품자가 상을 싹쓸이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콩쿠르의 출품 조건은 익명으로 내야 하는 것이었는데 펜데레츠키가 출품한 세 작품 ‘다윗의 시편’ ‘에마나치오넨’ ‘스트로펜’이 각각 1위와 공동 2위로 모든 상을 거머쥐었다. 이를 계기로 협회는 1인 1작품, 실명 출품으로 콩쿠르 요강을 변경하게 된다.

펜데레츠키는 1960년에 발표한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원폭 피해와 희생의 비극을 52대의 현악기를 두드리고 뜯으며 연주하는 매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이었다. 전쟁의 참담함을 잘 알았던 펜데레츠키는 이 작품에서 사이렌 소리, 폭탄 투하로 인한 소음 등을 예술적으로 녹여내며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2002년에는 2001년의 9·11테러 희생자를 위한 피아노 협주곡 ‘부활’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교향곡 제5번 ‘한국’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지휘와 KBS 교향악단의 연주로 1992년 8월 14일 대한민국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됐다.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을 위촉받았고 한국에서 초연됐기에 ‘한국’이라는 제목이 붙여지긴 했지만 표제음악은 아니다. 한국 전통 국악기인 편종, 편경이 사용되고 ‘새야 새야’의 선율이 등장하지만 서구적 음악어법에 충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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