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오창석(오른쪽) 백석대 교수가 지난 2019년 5월 케냐에서 오주한(가운데), 조원민 당시 대한육상연맹 부회장과 도쿄올림픽 선전 결의를 다지고 있다.  청양군 제공
고 오창석(오른쪽) 백석대 교수가 지난 2019년 5월 케냐에서 오주한(가운데), 조원민 당시 대한육상연맹 부회장과 도쿄올림픽 선전 결의를 다지고 있다. 청양군 제공
청양 = 박현수 기자

오주한을 얘기하면서 고(故) 오창석 마라톤 감독이자 당시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오 감독은 한국 마라톤 재도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지도자다. 충남 청양군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선수로 선발되면서 육상에 입문했다. 전국체전에서 서울시 대표선수로 출전했고, 1982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둬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만찬에 초대받기도 했다.

선수 은퇴 이후 고려대에서 ‘장거리 육상경기 선수의 심박수 역치로부터 추정한 예상 주행기록과 실제 주행기록과의 상관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국가대표 마라톤 코치, 미국 큐레이마라톤팀 감독, 국군체육부대 마라톤 감독을 맡아 김이용 선수 등을 육성했다. 한국 마라톤 중흥을 위해 2007년 케냐로 건너가 염소를 키우던 19세 오주한을 발굴해 지도한 지 4년 만인 2011년 경주국제마라톤대회를 시작으로 국내외 8개 국제대회 우승을 도왔다. 양아버지 역할을 도맡으며 오주한의 청양군청 입단도 성사시켰다.

오주한을 한국인으로 귀화시키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오 감독은 오주한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길 바랐다. 그러나 2015년 귀화 추진 중 체육계 내부 반대로 좌절됐다. 그러다 리우올림픽이 끝난 후 귀화를 재추진해 2018년 7월 우여곡절 끝에 한국인으로 귀화하는 데 성공했다.

오 감독은 사비를 들여 청양과 케냐에 ‘오주한 캠프’를 조성해 오주한과 케냐에서 함께 훈련하며 ‘올림픽 메달의 꿈’을 키웠다.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지도자로 불린 고인은 오주한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삿포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오 감독이 살아 있었더라면 오주한이 도쿄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는 팬이 적지 않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는 오 감독의 마라톤에 대한 헌신과 열정, 그리고 청렴한 인품을 들어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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