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北 영변 핵시설 재가동…국제사회 긴장
상업용 인공위성 통해 北核감시…‘핵무기 10배’ 트리튬 추출여부에 촉각

北, 美가 대화 응할것 요구하자
비핵화 협상재개 앞서 지렛대로
유리한 고지 선점하려는 의도

위기 국면마다 ‘보여주기식 쇼’
핵 기술 고도화 노린 포석일수도
일부 전문가 “영변 가치 안높아”

北 핵 기지 영변 外 13곳 이상
2027년까지 핵무기 242개 전망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2018년 12월 이후 멈춰 섰던 북한 영변 핵시설이 재가동에 들어간 징후를 최근 포착한 후 문재인 정부가 주장해온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한 번 커지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 핵 제조의 심장으로 상징성이 큰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도에 주목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이란 등에 우선순위를 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흔들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과 함께 핵 무력 증강이란 목표를 갖고 움직인 것이란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또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영변의 전략적 가치를 재확인시켜 비핵화 협상 재개 시 양보를 얻어내려는 카드라는 해석도 나오는 등 국제사회의 시선이 영변에 쏠리고 있다.

1. 영변에서 생산하는 핵물질과 다른 곳 생산 핵물질은 어떤 것

북한의 핵물질 제조능력과 핵시설 위치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국내외 정보기관들은 5㎿(메가와트)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 등 핵무기 제조의 핵심 시설을 갖추고 있는 영변에서 연간 20㏏(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폭발력)급 플루토늄 핵무기 1기 분량의 핵물질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하는 원심분리기를 통해 20㏏급 우라늄 핵폭탄 2기 정도를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한다. 영변 외에 황해북도 평산에는 우라늄 농축 공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고농축우라늄 생산에 사용되는 육불화우라늄(UF6)이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IAEA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평양 외곽에 위치한 강선 연구단지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강선은 북한 내 대표적인 정보기술(IT) 연구단지로 알려졌지만 IAEA는 영변 농축시설과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가동 정황이 있다고 분석했다.

2. 북한이 재가동한 영변 핵시설은

북한이 재가동한 영변 핵시설은 5㎿급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화력발전소 시설이다. 5㎿ 원자로는 1986년 가동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IAEA는 “5㎿ 원자로가 7월 초부터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 냉각수 방출 등의 징후를 보였다”고 전했다. 또 방사화학실험실에 증기를 공급하는 화력발전소가 올해 2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5개월가량 가동됐다. IAEA는 이 가동 기간에 주목하고 있다. 5개월은 단순한 유지·보수 활동이라고 보기엔 기간이 길며 사용후 재처리에 걸리는 기간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이 IAEA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5㎿ 원자로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완료하기 위해 5개월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실제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 작업을 할 당시에도 5개월 남짓이 걸렸던 만큼 이번에도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3. 냉각탑 폭파에도 핵시설 재가동이 가능한 이유는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대외 협상 주요 국면마다 보여주기식 쇼를 펼쳤다.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고 2018년 5월에는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를 폭파했다. 냉각탑에서 만들어지는 냉각수는 원자로 노심을 통과한 고온의 이산화탄소를 식히는 기능을 한다. 냉각탑 폭파는 원자로의 핵심 시설을 파괴했다는 상징적 조치였다. 하지만 북한이 냉각수 대신에 구룡강 물을 사용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최근 대북 전문매체 38노스는 상업위성을 통해 5㎿ 원자로와 인근 구룡강 사이에 연결된 새 수로를 발견했다. 국내외 정보당국은 북한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기 이전에 이미 냉각수 확보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북한이 2007년 시리아에 건설한 원자로는 인근 강물을 사용해 냉각하는 방식이다.

4. 북한이 영변 핵시설 재가동한 배경

북한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완료하고 대화에 응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 비핵화 협상 재개에 앞서 미국 여론을 움직여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압박 의도가 짙다. 특히 북한이 미국 등 서방 세계에서 영변 원자로 움직임을 시시각각 들여다본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노림수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동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시에 따라 핵 기술 고도화를 노리는 포석일 수 있다. 2018년 12월 이후 북한은 한동안 핵물질 추출을 자제했으나 이번 핵시설 재가동으로 새로운 핵물질을 계속 추출해 기술을 고도화하겠다는 의도다.

5. 영변 핵시설 언제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떤 시설이 있나

원자력 연구에 착수하는 대부분 국가가 그렇듯 북한 또한 연구용 원자로로 시작했다. 북한은 1962년 영변 단지에 소련이 지원한 IRT-2000 연구용 원자로를 시작으로 원자력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후 독자 연구를 통해 80% 농축우라늄 연료를 쓰며 열 출력은 8000㎾(킬로와트)에 달하는 원자로로 발전시켰다. 본격적인 원자로 개발은 5㎿ 원자로로, 1982년 4월 공사를 시작해 1985년에 최초 임계에 성공했고 1986년 1월부터 운전을 개시했다. 이후 1986년 50㎿ 원자로 개발에 들어갔으나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공사를 중단했다. 핵연료 재처리 공장인 방사화학연구소 또한 주요 시설로, 5㎿ 원자로의 사용후 핵연료를 퓨렉스법으로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우라늄 연료를 생산하는 핵연료 제조 공장도 영변에 있다.

6. 영변 핵시설에만 있다는 트리튬(삼중수소) 증산시설의 전략적 가치는

국내외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며 트리튬을 추출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존 북한이 추출한 핵물질은 주로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재가동이 일반 핵무기의 5∼10배 폭발력을 갖는 증폭핵분열탄용 트리튬을 추출했거나 이를 준비하는 과정일 경우 북한의 핵전력은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된다. 전문가들은 트리튬 반감기가 12년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주기적 증산이 필요한 만큼 북한이 군사적 목적으로 시설을 재가동한 정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핵보유국들은 핵 투발 수단을 늘리고 다양화하는 동시에 위력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는데 북한 또한 기존 플루토늄·고농축우라늄을 넘어 증폭핵분열탄 및 수소폭탄으로 고도화시키고 이를 전략화할 수 있다. 다만 트리튬의 반감기가 짧은 탓에 핵전력 전체를 고도화하기에는 북한의 역량이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있다.

7. 영변에 대한 전략적 평가

영변 핵시설을 직접 본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은 영변의 가치를 두고 ‘북한 핵전력의 80%’로 추산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이미 수십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영변의 가치는 그렇게 높지 않다”고 반박한다. 초기 핵개발국과 핵보유국이 갖는 핵시설의 가치는 다르다는 것이다. 핵개발국에는 핵시설이 전부지만, 핵보유국은 이미 갖고 있는 핵물질이 상당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핵보유국을 자칭하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가 제각각인 것도 이에 기인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능력을 과대 포장해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8. 국제사회의 영변 핵시설 감시

북한은 2009년 4월 영변 핵시설에서 IAEA 사찰단을 추방한 이후 IAEA의 자국 내 진입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 등 감시 활동은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 IAEA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띄운 인공위성이 영변 핵시설 일대를 촬영한 사진을 분석해 북한의 핵 개발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냉각탑에서 증기가 발생하는지 여부, 시설물이 철거되거나 새로 건설되는 정황 등을 포착해 북한의 내부 상황을 추적하는 것이다. 7월부터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상업용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파악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형상의 변화에 의존한 감시 활동에 그치고 있는 만큼 실제 북한의 핵 개발 움직임을 감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9. 영변 외 북한 내 핵기지는 어디

지금까지 알려진 북한 내 핵기지는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외에 황해북도 평산의 우라늄 광산과 정련 공장, 평안북도 태천 및 함경남도 신포의 원자력발전소 등 13곳 이상이다. 양강도 영저리, 자강도 하갑, 평안북도 천마산 등에도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고 경수로는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있다. 평양과 영변, 함흥산업대학, 양강도 혜산 국방대학원에는 연구시설이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정찰 자산을 활용해 평양 인근의 강선에서 우라늄 농축시설과 황해북도 황주지역 삭간몰 일대에서 미사일 기지 등을 추가로 찾아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영변 등 5곳 핵시설의 폐쇄를 요구한 바 있다.

10.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 양과 핵무기 數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적게는 20여 개에서 많게는 100여 개로 추정된다. 헤커 선임연구원은 25∼30개, 미국 랜드연구소는 67∼116개의 핵무기를 북한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랜드연구소는 지난 4월 아산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북한이 매년 핵무기를 10여 개씩 늘려 오는 2027년에는 151∼24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스웨덴의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6월 공개한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이 올해 1월 기준 40∼5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정철순·김유진 기자
정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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