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최초 개인용 컴퓨터 생산
두루넷 만들고 데이콤 초대사장
박약회 회장도 맡아 30년 활약
“한문교육 안하는건 사회적 손실
전통문화유산 버리는 일과 같아”
글·사진 박현수 기자
“한시(漢詩)는 특수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고, 일반인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한시는 인성교육을 위한 도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100세가 될 때까지 남은 인생은 현장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인성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30년 넘게 써온 한시 가운데 엄선해 500여 편을 우리말로 번역한 ‘행파 한시집(杏坡 漢詩集)’을 최근 펴낸 이용태 사단법인 ‘박약(博約)회’ 회장(89· 사진). 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한시를 읽는 사람도 없고, 한시를 쓰는 사람도 적은 것은 사회적으로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한자로 된 전통문화 유산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일상에서 느낀 감상에서부터 관광지에서의 경험, 가족과 친인척 친구, 각종 공식행사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순간과 인연을 한시로 읊었다. 그중에서 학창시절부터 절친인 ‘이어령 교수’라는 제목의 한시가 눈에 띄었다.
‘가슴 속에 만권의 책을 간직하고(胸藏萬券書)/뱉어내면 긴 강의 물결 같도다(吐出長江水)/뛰어난 생각은 귀신과 하늘을 움직이니(卓想動神天)/사람 중에 이보다 앞선 이가 드물도다(人人罕先此)’.
이장우 영남대 중문과 명예교수가 전체 교열과 번역 책임을 맡았고, 남옥주 퇴계학연구원 연수원, 주동일 전 영남대 강사, 이승발 전 경일대 특임교수가 번역 작업에 참여한 한시집에는 통상적인 저자 서문도 없다. ‘행파시집’이라는 제목의 자필 원고로 대신했다.
‘제4의 물결로 변해가는 세상을 살면서(變遷四波世),/이제 보니 벌써 구십 년이 흘러갔구나(於今九十年)/쳐다보고 내려다보니 허다한 일(俯仰許多事)/이 시들 가운데 점 찍혀 있구나.(點在此詩篇)’
그는 퇴계학연구원 이사장과 도산서원 원장을 지내면서 한시를 통해 도덕 사회 구현을 위한 인성교육을 강조했다. “기업 운영 당시 중국에 진출해 정부 인사와 한시로 교류하며 신뢰를 쌓기도 했다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인성교육 강연 활동을 하면서, 여러 편의 한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1994년 ‘국가 발전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선비정신을 계승하려는 유림단체인 박약회 회장을 맡아 30년 가까이 활약하고 있다. 박약은 박문약례(博文約禮), 즉 ‘널리 학문을 닦고 예를 지킨다’는 논어에서 가져온 말이다. “전국에 24개 지회를 둔 박약회는 1987년 설립 이후 인성교육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성교육에 활용한 내용을 정리한 저서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행복한 인생 사는 법 HPM’도 가제본까지 마친 상태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15년에 걸쳐 100명의 퇴직 교장들과 함께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강의한 자료와 경험을 모은 것입니다“. 이 회장은 이 책을 통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역지사지, 철저한 자기관리, 일의 우선순위와 명상을 강조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특히 명상을 강조한 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30분씩 ‘나는 행복합니다’를 반복해 말하면서 행복한 이유를 생각하며 명상을 한다“고 했다. 이같은 인성교육 방법론을 체계화해 ‘HPM(Habituation Practice Model)’이라는 개념도 정립했다.
얼핏 보면 유학자들을 모아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진부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으나, 이 회장은 대한민국의 최첨단 정보통신산업을 싹틔우고 발전시키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80년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삼보컴퓨터를 설립한 한국 1세대 벤처기업가로 꼽힌다. 대한민국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했으며, PC 단일 제조회사로는 세계 최고 기업으로 일궜다. 이 외에 국내 최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회사인 두루넷을 창업했고, 데이콤 초대 사장을 지내며 한국의 전자정부(e-Government) 시스템을 1988년에 처음으로 개발했다. “그 이후 한국은 2년마다 한 번씩 실시하는 유엔의 전자정부 평가에서 세계 1등 자리를 가장 오래 차지해 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강국이자 초고속인터넷 시대를 여는 초석을 다진 공로로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정보통신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보통신 선구자에서 인성교육 전도사로 변신한 이 회장은 전립선암과 간 경화, 폐결핵, 고혈압, 당뇨병 등을 달고 살았으나 병원 치료와 함께 명상과 식이요법, 등산 등을 통해 모두 극복했다고 한다.
그는 교육자로도 널리 명성을 떨쳤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스타 강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지흠(李之欽)’이라는 필명으로 ‘수학의 강의’ 등 21권의 책을 냈고, 종로2가에 제일학원을 설립했다. 이어 이화여대 교수, 학교법인 숙명학원 이사장,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 대통령 교육개혁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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