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정치부 차장

1941년 6월 22일 아돌프 히틀러가 다스리는 나치 독일은 불가침조약을 깨뜨리고 소련을 침공했다. 전격전을 내세운 독일의 공격에 소련군은 패퇴에 패퇴를 거듭했다. 하지만 독일의 침공은 이미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었다. 히틀러가 공산당에 대한 혐오와 게르만족의 슬라브족 지배를 공공연히 외쳐 왔기 때문에 소련 침공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심지어 미국과 영국 등은 독일 침공 계획을 소련 최고지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전했다. 역사상 최고의 스파이로 평가되는 리하르트 조르게도 5월에 독일이 150개 사단을 동원해 6월 20일 침공(기상 악화로 공격일 이틀 연기)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영국과 전쟁 중인 히틀러가 불가침조약을 깨고 양면전쟁을 일으킬 리 없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이런 경고들을 전부 무시했다. 지도자의 아집은 독재국가뿐 아니라 현재 민주국가에서도 벌어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보 당국과 군, 언론의 계속된 경고에도 8월 31일 아프가니스탄 철군 일정을 고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7월 기자회견에서 “탈레반이 모든 것을 제압하고 국가 전체를 소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아프간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걸 보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결과는 1975년 사이공의 재연이라 불리는 최악의 퇴각이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아집 그 자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9월 연례 이사회 보고서에서 북한 영변 핵시설이 7월 초부터 재가동에 들어간 징후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IAEA에 북핵 정보를 가장 많이 전달하는 국가가 미국임을 감안하면 동맹국인 한국에 이를 통보하지 않았을 확률은 낮다. IAEA 보고서 공개 후 “북한의 핵 활동과 미사일 동향을 한·미 정보 당국이 면밀하게 살피고 있었다”는 정부 반응을 보면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동안 남북 연락선 복원 사실은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영변 핵시설 재가동에는 침묵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7월 27일 연락선 복원 당시 “양 정상은 남북관계가 오랜 기간 단절돼 있는 데 대한 문제점을 공유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조속한 관계 복원과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정상 간 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임기 말 대북 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불리한 정보인 핵시설 재가동 사실은 감추고 유리한 내용인 연락선 복원만 국민에게 전한 셈이다. 게다가 미국으로부터 코로나19 백신을 받아 군에 접종을 완료해놓고도 코로나19를 핑계로 한·미 연합훈련마저 대폭 축소했다. 핵시설 재가동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언한 핵 능력 고도화에 있음에도 북한 심기를 거스를까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방어 태세 구축에는 눈감은 것이다.

역사는 지도자의 아집이 얼마나 많은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스탈린의 아집은 4년간 이어진 전쟁에서 2000만 명이 넘는 소련인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집은 아프간인과 테러로 사망한 미군 13명의 생명은 물론 20년간 국제사회가 아프간에 쏟았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김석

김석 기자

문화일보 / 기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