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다산 정약용은 세상의 온갖 아이러니를 꼬집는 시에서 ‘벼슬하는 놈은 죄다 어리석고, 재주 있는 사람들은 통 쓰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다산이 살아 있다면 여기에 ‘친문이면 재주 없이도 한자리한다’고 한 줄 덧붙이게 만들 일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인 ‘한국판 뉴딜펀드’를 총괄하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2본부장에 금융 이력이 없는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낙점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한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및 뉴딜금융 지원 방안’에서 정부와 정책 금융기관이 2025년까지 7조 원을 출자해 모펀드를 만들고, 민간자금 13조 원으로 자펀드를 만들어 운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20조 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와 기업구조혁신펀드 등의 운용·관리를 총괄하는 곳이 한국성장금융의 투자운용본부다.

한국성장금융은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이 주요 주주로 참여해 만든 사실상의 공기업이다. 그런데 뉴딜펀드를 전담할 투자운용2본부를 신설하고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신임 2본부장에 선임하겠다는 안건을 주주총회에 상정한다는 서한을 지난 1일 발송했다고 한다. 오는 16일로 예정된 주주총회가 이 안을 통과시킨다면 낙하산 인사의 끝판왕이 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황 전 행정관은 자산운용 분야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선대위 전략기획팀장을 지냈고, 조국 민정수석 시절 그 밑에서 행정관을 지냈다. 전형적인 정치권 ‘기획통’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투자운용본부장은 자산운용이라는 고도의 전문성과 다양한 투자 경험이 요구되는 자리다. 다른 자리라면 모를까, 투자운용본부장에는 설사 낙하산이라 하더라도 관련 전문가 중에서 뽑아야 한다. 최악의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낙하산 인사 논란에 대해 청와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업’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하지만 누가 이 말을 그대로 믿겠는가. 황 전 행정관은 지난 2019년에도 관련 경력이 전무한 데도 구조조정 전문회사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 상임감사로 임명돼 낙하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기왕에 투자본부가 있는데도 투자본부를 하나 더 만들고는 이 자리에 자산운용과는 거리가 먼 비전문가를 선임한다니 황 전 행정관을 위해 새로운 자리를 만든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공기업 낙하산·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 말기로 갈수록 ‘알박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 언론사 분석에 따르면 올해만 127개 비금융 공기업·준정부기관 두 곳 가운데 한 곳 꼴로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기용됐다. 금융기관은 더욱 심각했다. 금융노조는 문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11월 기준 금융 공공기관에 선임된 임원 134명 중 친정권 인사 등이 63명으로 47%에 이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라도 문 정부는 전문성을 무시한 잘못된 인사를 접고 좀 더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인물을 찾아 펀드 운용을 책임지게 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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