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톡 - 장이머우 감독 ‘공작조:현애지상’
일본 침탈 1931년 중국 하얼빈
소련서 훈련받은 4명의 공작조
작전명 ‘새벽’으로 비밀 임무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한 작전속
순간순간 비치는 인간적인 고뇌
장이머우 감독 첫 스파이 영화
정교한 심리묘사… 기시감 없어
제국주의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만주국을 세운 1931년의 하얼빈(哈爾濱). 소련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온 4명의 공작조가 작전명 ‘새벽’이라는 비밀 임무에 착수한다. 순조로울 줄 알았던 그들의 작전은 배신자의 밀고로 큰 위기에 처한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이들은 마지막까지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선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1930년대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였다. 제국주의 횡포가 극에 달하고 동아시아를 겨냥한 일본의 침탈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한국과 중국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나라를 빼앗긴 후 이를 되찾으려는 애국단체와 지사들의 항거가 계속됐다.
‘붉은 수수밭’(1988) ‘영웅’(2003) ‘황후화’(2007) 등 수많은 명작을 만든 거장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생애 처음으로 스파이 영화 ‘공작조 : 현애지상’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숨을 건 첩보작전엔 스릴과 낭만, 숭고함이 함께 배어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일본 치하 하얼빈의 모습은 18세기 말 프랑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처럼 엄혹하지만, 동시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 ‘벨 에포크’처럼 찬란하다. 스파이들의 숨 막히는 암투 위로 무거운 폭설이 쏟아지는 거리, 두껍고 고급스러운 외투와 모자로 멋을 낸 패션, 그들이 타고 다니는 클래식 자동차, 찰리 채플린의 ‘골드 러시’를 상영하는 추억의 극장 등은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국가와 이념이 그들을 갈라놓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서로 적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낭만적이었을 것인가.
이 중에서도 러닝타임 120분 내내 하염없이 퍼붓는 폭설은 장 감독이 자신의 영화임을 의미하는 ‘인장’ 같다. 스파이들이 낙하산을 타고 침투하는 설산에서 시작된 폭설은 피도 눈물도 없이 포로를 총살하는 사선에서도, 신분이 발각돼 총격전이 벌어지는 기찻길에서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는 하얼빈의 골목에서도, 절체절명의 탈출을 시도하는 카 체이싱에서도 계속된다. 폭설은 지극히 양가적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여행과 휴식 중에 만나는 눈은 낭만적이겠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마주하는 눈은 매우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파이들의 치밀한 작전을 냉정하게 따라가지만 순간 순간 비치는 인간적 고뇌는 리얼리티를 효과적으로 강화한다. 스파이 그룹의 리더 장셴첸(장이·張譯)이 국가 임무 때문에 생이별해야 했던 어린 자식들이 호텔 앞에서 구걸하는 부랑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흔들리는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클래식’은 다 있다. 암호 해독, 위장술, 배신자, 전기고문, 이중첩자, 총격전, 심리전 등. 그러나 이전과 똑같다는 기시감은 들지 않는다. 그만큼 상황과 대사가 치밀하게 짜여 있고, 등장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심리를 정교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중국 애국지사들의 이야기이지만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 않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처럼 비장하고,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장 감독이 중국 열사들의 애국에 경의를 표한다는 말을 엔딩 크레디트로 전할 때 가슴이 뭉클해진다. 영어 제목은 ‘클리프 워커스(Cliff Walkers·벼랑 끝을 걷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사력을 다한다. 16일 개봉, 15세 관람가.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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