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률 상승·‘최대 8인’ 허용
“이번엔 오나…” 바라는 부모
“애들이 미접종” 꺼리는 자식
부모 - 자식간 ‘눈치싸움’ 재연
‘가느냐 마느냐’ 부부갈등 여전
특별방역대책이 부른 ‘불씨’
30대 김모씨 딸과 부산 친가로
아내는 아들 데리고 친정으로
‘서로 편한’ 이산가족 귀성 등장
“여태 백신 안 맞고 뭐 했니.”
경기 성남시에 사는 직장인 장모(여·37) 씨는 최근 경남 창원시에 홀로 거주하는 70대 시어머니와의 통화 중 핀잔을 들었다. 장 씨가 “아이들이 아직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을 못 해서 추석에 찾아뵙기 어렵겠다”고 말하자 시어머니는 “나는 2차 접종까지 마쳤는데, 명절에 오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장 씨는 16일 “50대 이하는 순서가 늦어져서 불가피하게 애들은 접종을 아직 못 시켰는데, 괜스레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이모(여·33) 씨도 얼마 전 남편과 오는 추석 연휴 고향 방문 문제로 크게 다퉜다.
외동딸인 이 씨는 그간 친척 교류 없이 부모님과 명절을 지냈고, 이번에도 양친이 사는 강원도를 남편과 함께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정부의 가정 내 사적 모임 제한 규제로 대가족인 시댁 방문이 망설여진다고 남편에게 귀띔하자 “결혼하고 맞는 첫 명절인데, 부모님 뵙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도리가 아니다”라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이 씨는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야기한 게 아닌데, 남편에게 섭섭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1년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추석을 앞두고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사이에 고향 방문을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설에는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내려졌지만, 이번 추석엔 전국 가정에서 백신 접종 완료자 4인을 포함해 모두 8인까지 가정 내 가족모임이 허용됐다. 이 때문에 코로나 사태 이후 2년간 명절에 아들, 딸 얼굴을 보지 못한 부모 중에는 오는 추석엔 자녀들이 찾아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이가 많다.
반면, 장거리 이동·제사 등으로 고향 찾기를 꺼렸던 일부 젊은층의 경우 ‘백신 미접종’을 핑계 삼아 방문을 또 한 번 미루면서 부모·자식 세대 간 ‘눈치 싸움’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부부 사이에서도 고향 방문을 둘러싼 잦은 다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중 맞았던 예년 명절보다 올해 추석 유독 세대·부부간 고향 방문 문제로 갈등 불씨가 커진 데는 방역 당국이 지난 4일 발표한 ‘추석 특별방역대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추석 연휴(18∼22일)엔 4단계 지역의 가정 내 가족 모임에 대해선 3단계 사적 모임 기준이 적용된다.
1차 접종자와 미접종자는 4인까지만 모임을 허용하지만, 예방접종 완료자 4인을 포함하면 8인까지 가정 내 가족 모임이 가능해졌다. 최대 4인까지 모임을 허용한 지난 설과 달리 올해는 부모가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면, 4인 가구 자녀 세대와 함께 명절을 보내도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령층과 젊은 세대 간 백신 접종률 양극화도 갈등 불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60세 이상 고령층 백신 접종 완료율은 86%에 달한다.
이와 달리 지난달 26일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한 40대 이하 젊은 층의 경우 여전히 1차 접종이 순차 진행되고 있어 접종 완료율은 20%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최모(42) 씨는 “지난 명절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심하니 오지 말라고 말렸던 부모님이 이번 추석에는 찾아주기를 은근히 기대하신다”며 “2년간 명절 고향 방문을 안 하는 것에 적응됐는데, 최근 ‘위드 코로나’ 분위기도 덩달아 형성되면서 대놓고 못 가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는 추석 연휴에는 부부, 자녀가 뿔뿔이 흩어지는 일시적 ‘이산가족’ 형태의 고향 방문 계획도 등장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결혼 6년 차 김모(39) 씨는 딸만 데리고 부산 친가를 찾을 예정이다. 김 씨는 “아내는 아들과 함께 장인·장모댁에서 추석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며 “고향 방문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보다는 아내와 대화 끝에 모처럼 서로가 편한 곳에서 명절을 보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정부의 오락가락 방역 대책 때문에 추석 고향 방문을 둘러싼 가정 내 불화가 커지고 있다는 푸념도 나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그렇지 않아도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데, 정부가 사적 모임 기준을 갑자기 변경하면서 괜히 경험하지 않아도 될 가정 내 갈등을 겪고 있다”며 “백신 도입이 늦춰지고 세대 간 완료율이 다르다 보니 서로가 동상이몽만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고향을 찾지 않아 명절 가족 간 불화는 지난 2년간 잠잠했지만, 백신 접종 완료율이 점차 높아지면서 그간 쌓인 갈등과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부부, 세대 간 명절 갈등을 봉합하고 모두가 만족스러운 명절을 보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성훈·최지영 기자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