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작가 초상,   49×49㎝, 혼합재료, 2020.
김병종, 작가 초상, 49×49㎝, 혼합재료, 2020.


■ 김병종의 시화기행 - (89) 더블린과 작가 오스카 와일드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삶 살다 간
더블린 천재작가 오스카 와일드

“오직 사랑만이 세상 고통 설명”
“그대 나를 덜 사랑했더라면…”
전광석화 같은 수많은 글 남겨

“유혹 빼곤 모든 것에 저항한다”
‘저항’하지 못한 건 性的 욕망
동성애로 투옥… 40대 生 마감

그의 생가엔 송별의 발길 계속
육체 사라져도 ‘언어 밈’ 남아


인생은 결국 잘해야 한두 줄의 문장으로 기억된다. 평생 글을 쓴 문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괴테는 자기의 명성과 생애를 “운명이 내게 베풀어준 따뜻한 선의의 조각들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정의했다. 노벨상을 받은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죽음의 발소리가 들려올 때 묘비명에 써달라며 그 유명한 한 줄을 남겼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가장 명료하고 벼락같은 한마디는 십자가상의 예수가 아닐까. “다 이루었다.”

한 생애를 몇 글자 언어의 부표로 띄울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육체는 사라져도 그 언어의 ‘밈’이 수없이 복제되며 생명현상을 이어간다는 것. 사라져 가는 인생들이 영원한 시간 위에 지문 하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하나의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자, 그 토해낸 말과 글로 오늘까지 셀럽이 된 오스카 와일드의 경우는 어땠을까. “나는 유혹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번번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유혹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성(性) 문제, 그중에서도 동성애가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그가 동성애로 투옥되기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날개도 없이 추락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으니까. 그런데 그의 아버지 역시 기사 작위까지 받은 저명한 의사였지만 동료의 딸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니 성(性) 문제는 재능 많은 이 집안 최대의 복병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가적 자존감만은 늘 충천해 있었다. 미국에 초청강연을 갔을 때 세관원이 신고할 물품이 없느냐고 하자 대답했다는 그 유명한 한마디. “없소, 내 천재성밖에는.”

작가적 태도 또한 철저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 단 하나 미스 프린트를 제외하고는.”

그의 동상이 있는 메리온 스퀘어 공원을 찾아가면서 생각해본다. 떠난 지 한 세기를 훌쩍 넘어선 과거 작가인 그의 팬덤은 왜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명문 옥스퍼드대 출신의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 무엇보다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에까지 알려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작품의 대히트와 그에 따른 아우라, 거기에 사교계의 총아가 될 만큼의 박식한 교양과 화술, 이제는 어록이 돼 회자될 정도의 말과 글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위대한 생애도, 뛰어난 문호도 최종적으로는 한두 줄의 글로 남겨질 뿐이라는 말도 그에게만은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전광석화 같은 멘트를 그만큼 순발력 있게 날린 작가도 문학사에는 없지 싶을 정도니까.

김병종 화백이 오스카 와일드 생가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병종 화백이 오스카 와일드 생가에서 포즈를 취했다.

수많은 선남선녀의 작업멘트로도 인용됐다는 그의 ‘사랑’에 관한 말들을 보자.

“오직 사랑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 것 같아.”

“사랑에 빠진 사람의 결심은 시월의 소나기 같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

“아! 기쁨의 비가 내리던 그 모든 여름날 그대가 나를 덜 좋아하고 더 사랑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슬픔의 상속인이 아니었을 텐데.”

“대지는 한 송이 은꽃, 달은 한 송이 금꽃.”

“밤의 검푸른 어둠이 물러난 뒤 백합의 창에 별 무리가 둘릴 때, 그녀의 얼굴, 태양을 향해 고개 돌리는 해바라기인 듯….”

그러잖아도 그를 흠모하던 여성들은 살강, 와인잔을 부딪치며 이런 대화를 나눌 때 그가 쳐놓은 보이지 않은 그물망에 갇혀 꼼짝 못 하는 포로가 돼 버리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객쩍은 생각을 하며 조지아 양식 주택들 사이에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생가를 둘러보고 길을 건너 메리온 스퀘어 공원으로 들어선다. 커다란 바위 위에 붉은 칼라의 초록 재킷에 다분히 비도덕적인 자세로 비스듬히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그의 동상.

“아주 도덕적인 태도는 건강이나 행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멘트를 생각나게 하는 포즈다. “선행은 복숭아의 달콤함, 악행은 복숭아의 맛있는 풍미인 청산 한 방울.”

그러나 어쩌랴, 지금도 무수한 여성이 이 다분히 악마적이고 퇴폐적인 잘생긴 작가를 찾아와 동상 여기저기 루주 자국을 묻혀놓고 간다고 하니. 공원은 말이 공원이지 그냥 한 작가에 대한 헌정 정원과 같았다. 더구나 그 맞은편에 그가 어렸을 적 살았다는 집이 그대로 있으니 그의 수많은 말과 함께 그 이름을 현존으로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이 또한 무서운 언어유전자 ‘밈’의 위력이다.

생가와 공원을 떠나오면서 거리를 걷는데 간혹 그의 포스터들이 보인다. 지나치는 서점 유리창에도, 극장 입간판에도, 심지어 카페에도. 특별히 셀럽 오스카 와일드의 동네여서일 것이다. 출소한 후 고국에서 영구 추방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삶이었던 데다 겨우 4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고 지상에서 이미 천국과 지옥을 다 경험한 사람이었던 오스카 와일드. 마지막에는 파리의 한 B급 호텔에 몰래 방 한 칸을 얻어 들어가서 거기서 홀로 죽어갔던 비운의 작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까지도 잘 빼입고 거리에 나가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면 당당한 태도로 “나 오스카 와일드요. 돈 있으면 좀 주시오” 했다는 사람. 그의 소설이 실제 그의 삶을 따라잡지 못했을 만큼 극적인 삶을 살다 간 작가이자 살아서 이미 신화와 전설이 된 사람. 죽음의 길은 외롭고 쓸쓸하게 보냈지만 꽃을 들고 찾아오는 송별의 행렬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 그의 죽음은 아예 없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세관 신고할것은 내 천재성 밖에 없다”
옥스퍼드대 출신에 뛰어난 외모·화술


더블린 출생(1854∼1900)의 극작가, 시인, 소설가. 드라마틱하고 질풍 같은 삶을 살다간 19세기 말의 유미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다. 특히 독특한 페이소스와 아포리즘으로 작열하는 그의 희곡들은 수많은 관객을 몰고 다녔으며, 트리니티대와 옥스퍼드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데다 수려한 외모, 거기에 번뜩이는 재기와 화려한 행동으로 사교계의 총아가 되기도 했다. 미남 청년 도리언이 쾌락의 나날을 보내다가 악덕의 임계점에서 스스로 파멸하는 내용을 담은 다분히 자전적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작가적 명성을 떨치게 된다.

작품으로는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옥등기’ ‘살로메’ ‘리딩 감옥의 발라드’ 등이 유명하다. 그 밖에 다수의 희곡과 동화 그리고 시집을 남겼다. 동성애 사건으로 투옥됐고 출소한 뒤에는 영구 추방돼 영국과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곤고한 삶을 살다가 파리의 한 호텔에 장기 투숙하던 끝에 병으로 비참한 생을 마치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상이 있는 공원 입구의 입간판엔 “신고할 것은 내 천재성밖에 없다”고 세관원에게 했다는 말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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