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줄 가운데가 고 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 뒷줄 왼쪽이 필자.
앞줄 가운데가 고 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 뒷줄 왼쪽이 필자.
■그립습니다 - 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1926∼2021)

남고(南皐) 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이 95세로 올 1월 영면하셨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유족의 뜻을 존중해 마음속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각계각층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경제계의 거목이자 우리 시대의 어른이었다. 생전 본업인 장수기업 삼양사의 경영 외에도 무려 100여 개의 단체를 정력적으로 이끌었다. 우리나라의 경제, 체육, 환경, 문화 민간외교 등 사회 전반에 그가 남긴 발자취는 또렷하다. 한일경제협회 회장으로 봉직했던 7년간 그와 함께한 것은 내 인생에 큰 행운이었다.

1998년 외환위기 속에 한일경제협회 회장은 3개월여 공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지무라 마사야(藤村正哉) 일한경제협회 회장은 박태준(한일경제협회 초대 회장) 자민련 총재에게 걱정을 토로했다. 양국 경제계의 가장 큰 행사가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후임 회장으로 아주 훌륭한 분이 내정됐으니 안심하세요”라는 말을 박 총재에게서 들었다고 후지무라 회장은 후일 회고했다. 현직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바쁜 김상하에게 박 총재는 삼고초려 심정으로 협회장 수락을 부탁했었다. 김대중 당선자를 도와 외환위기 극복에 여념이 없었던 박 총재의 이 선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본 ‘신의 한 수’였다.

1998년 2월 제7대 협회장에 취임한 김상하. 그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금석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제30회 한일경제인회의였다. 과거 30년에 걸쳐 한일경제협력의 바탕을 다져 온 이 회의의 역사와 중요성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외환위기 속에서 국내 기업인들은 일본에까지 가서 회의에 참석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는 기업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개최지인 미야자키(宮崎)까지 전세기를 타고 우리 기업인 130여 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 앞서 회장단 예방을 받을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등 일본 정부 각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회의를 준비하며 노심초사했던 일본 경제인들의 감동은 남달랐다. 김 회장의 진심이 일본 경제인 등 일본 국민의 마음에 닿았다. 그들의 감동은 그해 5월 8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투자사절단 파견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소 “외교란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 정계와 부지런히 접촉하던 박 총재와 이인삼각의 역할을 그가 훌륭하게 수행해낸 것이다. 민간외교의 모델을 김 회장은 보여줬다. 후지무라 회장은 김 회장의 인품을 평소 이렇게 표현했다. “김상하 회장은 언제나 밝고 웃음 가득한 얼굴이 설득력이 있고 유머러스한 화법, 호방하면서도 자상한 마음 씀씀이를 가진 대인이다. 김 회장이 참석하는 자리에는 언제 어디서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그는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자주 협회 사무국 임직원들과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퇴임한 이듬해에는 필자의 딸 결혼식에 85세의 노구를 이끌고 와 축하해줬다. 피로연에까지 참석해 하객들과 담소하며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은 내게 큰 감동이었다. 면담을 신청하면 꼭 시간을 내줬고 날짜와 시간을 복수로 주며 상대방을 배려했다. 매년 5월 ‘수당상’ 시상식에 초청해줬으며 설날과 추석에 선물을 빠뜨리는 일도 없었다. 작은 인연도 소중하게 여기며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신 김상하 회장님 그립습니다.

허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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