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윤석 기자의 북레터

미국 예일대에서 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 절반에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줬고, 나머지 사람들한텐 차가운 커피를 제공했습니다. 그런 다음 진행자는 ‘지적이고 주도면밀한’ 인물 A를 묘사한 글을 읽게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뜨거운 커피를 마신 참가자들은 A를 ‘따뜻한’ 인물로 파악한 반면, 아이스 커피를 받은 이들은 ‘냉철한’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사회심리학자 한스 이저맨이 쓴 ‘따뜻한 인간의 탄생’(머스트리드북)은 이처럼 ‘물리적 온도’와 ‘사회적 온기’의 연관성을 분석합니다. 예일대 실험이 전자가 후자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면, 그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은 온라인 게임 참가자들에게 ‘실내 온도’를 추정해보라고 했습니다. 프로그램 통제를 통해 절반은 팀을 꾸려 ‘소속감’을 느끼도록 했고, 나머지는 홀로 소외된 채 경쟁자와 싸우게 했습니다. 그 결과 두 집단의 온도 추정치는 3도가량 차이가 났습니다. 물론 소속감을 경험한 참가자들이 실험 공간을 더 따스한 곳으로 받아들였죠.

책은 ‘따뜻한 것’을 ‘차가운 것’보다 우호적으로 느끼는 현상이 진화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불을 사용하고, 옷을 입고, 집을 짓는 ‘사회적 체온 조절’ 본능이 인류 역사를 이끌었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유아기에 부모 품에 안겨 보살핌을 받으며 ‘체온’과 ‘사랑’의 관계를 체득합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거쳐 본능적으로 따뜻한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조력자’라고 믿게 됩니다. 우리 뇌가 마치 ‘기상 관측’을 하듯 주변인의 ‘온도’를 측정하는 겁니다. 저자는 남극의 펭귄이 혹한을 견디기 위해 몸을 밀착해 체온을 나누듯, 인간에게도 “따뜻함은 생존과 번식에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따뜻함 속에서 아늑함을 느끼는 존재이기에 다른 조건이 같다면 ‘온화한 기후 환경에서 사는 시민일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 어딜 가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화제입니다.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 속엔 ‘옆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사는’ 서바이벌 전장(戰場)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절망이 깔려 있을 겁니다. 몇 달 뒤면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치러집니다. 부디 다음 지도자는 차갑고 냉혹한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책 메시지처럼 진보의 역사는 따뜻함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었고, 우리는 따뜻한 환경에서 더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요.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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