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다시 계몽│스티븐 핑커 지음│김한영 옮김│사이언스북스
수명·환경·富·식량·평화 등
계몽주의가 인류사 바꿨지만
자극적 뉴스 탓 비관론 팽배
‘지식’ 활용하면 삶 개선 가능
인지 과학자 스티븐 핑커 교수
75개 데이터로 계몽 효과 증명
2014년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잡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은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이런 명대사를 남겼다. 절멸 위기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 탐험에 나선 주인공 쿠퍼(매슈 매코너헤이 분)의 이 읊조림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적 인간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데 우주과학, 인간의 의지, 문제 해결 등 이 영화에 담긴 요소를 뜯어보면 계몽주의의 코드가 보인다. 이는 인간이 이성과 과학을 무기 삼아 세계를 이해하면 인류의 삶의 조건을 향상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인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새 책 ‘지금 다시 계몽’(원제 Enlightenment now)은 이 같은 계몽주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18세기 등장해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정신적 바탕이 된 계몽주의는 21세기 현재의 인류에게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지침이라는 얘기다.
저자의 출발점은 현실 개탄이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세계는 인간의 안녕과 복리의 모든 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진보를 이뤄왔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계몽주의의 성과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와 냉소가 대중과 지식인 사이에 팽배해 있다. 계몽주의에 기반해 만들어진 근대 제도는 실패했고, 삶의 모든 양상이 점점 더 위기에 빠져들고 있으며, 심지어 이 제도를 파멸시켜야 세계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라 계몽주의 프로젝트, 즉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세계는 “손수레에 실려 지옥으로 굴러 내려가고” 있는가.
책에 동원된 75개에 달하는 그래프와 방대한 데이터는 생명, 건강, 식량, 부(富), 불평등, 환경, 평화, 안전, 테러리즘, 민주주의, 평등권, 지식, 삶의 질, 행복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계몽주의 프로젝트가 효력을 발휘해 인류 역사를 바꿔 왔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18세기 말 계몽주의가 꽃피운 뒤 전 세계 인구의 기대수명은 30세에서 70세로 늘었다. 1960년대 18%에 달했던 유아 사망률은 2015년 4%로 떨어졌다. 지난 200년 동안 세계의 총생산은 약 100배 증가했다. 같은 시기 세계의 극빈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90%에서 10% 수준으로 줄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측정할 수 있다. 만일 이것들이 시간과 함께 향상돼 왔다면, 그것이 진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주적 생득권(cosmic birthright)이 아니라 인간이 이룬 업적이다.” 계몽의 시대가 열린 뒤 역사는 진보했으며, 이는 저절로 되거나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 의해 이뤄진 게 아니라 인간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비관론에 빠지거나 종말론적 세계관에 경도되고, 계몽주의의 기획을 촌스럽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취급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편향’이라는 인간의 인지편향과 “피가 최고의 도입부(If it bleeds, it leads)”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저널리즘의 습성에 우선 책임을 묻는다. 인간은 구체적인 사례가 얼마나 잘 기억나는지에 따라 그런 사건의 확률이나 빈도를 추정하는 편향이 있는데, 미디어가 세계를 “눈물의 골짜기, 비통한 넋두리, 실망의 늪”으로 묘사하면서 이들의 인식 왜곡을 부추긴다.
20세기 후반 좌파 학계를 이끈 비판이론 및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 자유민주주의와 국제기구 등 계몽주의가 낳은 소중한 제도들마저 깨뜨리려 하는 21세기 좌·우파 포퓰리스트들도 책임을 면치 못한다. “이 운동들은 세계주의가 아니라 부족주의를 내걸고,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를 칭송하며, 지식을 존중하기보다는 전문가를 경멸하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기보다는 목가적인 과거를 그리워한다.”
불평등과 환경 위기에 대한 우려마저 “지나친 비관론”으로 치부하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논쟁적이다. 결국 길을 찾아낼 것이라는 낙관론은 자칫 다가오는 파국을 외면한 채 현상 유지에 급급한 기득권 집단,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정부 등에 악용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 갈등과 진영 싸움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이 시대에 감정이나 직관이 아닌 이성, 종교나 신념이 아닌 과학을 무기로 삼아 인류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864쪽, 5만 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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