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나폴리 등 주요도시
좌파정당 후보가 시장직 석권

로마 사상 최초 女시장 라지
득표율 19.5% 일찌감치 낙선


최근 총선을 통해 중도 좌파 성향의 정권이 들어선 독일·노르웨이에 이어 이탈리아에서도 좌파 정당 소속 후보들이 주요 도시 시장직을 석권하면서 유럽 전역에 걸친 좌경화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2월 마리오 드라기 총리 취임 후 처음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를 계기로 장기적으로는 좌·우 정당이 균형 있게 참여하고 있는 드라기 내각의 권력 균형이 바뀔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에 따르면 지난 3~4일 이탈리아 대도시를 포함한 1192개 지방자치단체에서 1200만 명 이상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일제히 치러진 지방선거 결과 밀라노와 볼로냐, 나폴리에서 중도 좌파 정당 소속 후보가 과반을 득표했다. 이에 따라 오는 15~16일 예정된 결선 투표를 치를 필요 없이 당선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토리노에서도 좌파 후보가 앞서가고 있지만, 과반을 획득하진 못한 상태다.

세간의 관심이 쏠렸던 로마에선 지난 2016년 사상 최초의 여성이자 최연소 시장으로 집권한 비르지니아 라지가 득표율이 19.5%에 그쳐 일찌감치 낙선권으로 떨어졌다. 라지 시장의 운명은 곧 본인이 속한 원내 최대 정당 ‘오성운동(M5S)’의 운명과도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라지 시장은 이날 호텔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나는 가장 어려운 일을 맡았고, 확신을 갖고 일을 했다. 누구든 내 후임이 될 사람에겐 어떠한 변명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며 패배를 인정하는 듯한 연설을 했다. 현재 로마 시장 선거에선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 후보인 엔리코 미케티가 30.3%를 얻어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 중도좌파 민주당(PD) 후보로 2위를 기록 중인 로베르토 구알티에리(득표율 27.1%) 전 재무장관과 결선투표에서 맞붙으면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망했다. 개표 작업은 5일까지 지속될 예정이지만, 엔리코 레타 PD 대표는 “우리는 국민 정서와 다시 맞닿아 우파를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좌파 진영이 이미 승기를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

로마마저 좌파 진영에 넘어가게 되면 우파 연합에는 적잖은 정치적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우파 진영에서 드라기 총리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극우당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 Fdi의 조르자 멜로니 대표의 집권 구상에 차질로 작용할 전망이다. 살비니 대표는 “우리는 이번 실수로부터 배울 것”이라고 반응했다.

선거 결과가 드라기 내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중론이나, 전국 평균 투표율이 사상 최저치였던 55%에 못 미치는 등 선거 참여율이 저조했던 것이 유권자들 사이의 불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선거는 취임 당시 지지율이 70%를 훌쩍 넘겼던 드라기 내각의 코로나19 대응 성적에 대한 잠재적인 시험대로 여겨졌다.

스웨덴·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에서 좌파 진영이 줄줄이 집권에 성공한 가운데, NYT는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프랑스에서만큼은 좌파 진영이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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