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음악에 열정 보여
부모 반대로 혼자 유학길 올라
생계 위해서 레슨·교사 생활
쉰 이후 대중·평단 호평 받아
노년까지 왕성하게 작곡 활동
흔히 50세는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나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요즘의 50세는 여전히 젊다. 과거의 ‘쉰세대’는 이제 ‘신중년’이라 불리며 30·40대 못지않은 열정과 체력을 자랑한다. 음악사에는 타고난 재능으로 일찍이 세상에 이름을 떨친 이도 있지만, 50세를 채우지 못하고 단명한 위인도 많다. 하지만 그중엔 음악가로선 원숙기에 들어설 50세의 나이에 마침내 자신의 첫 커리어를 시작해 노년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던 작곡가도 있다. 바로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 에두아르 랄로(1823∼1892)다.
랄로는 프랑스 릴에서 스페인계 군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견했고 부모에게 음악가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의 부모는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랄로의 의지 또한 확고했다. 겨우 16세의 어린 나이에 무일푼으로 유학길에 올라 파리음악원에 당당히 입학했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프랑수아 아브네크에게서 바이올린을 사사했다.
음악원 졸업 후 랄로는 작곡에 전념해 25세가 되던 1848년 신인 음악가 최대 등용문인 ‘로마대상’에 작품을 출품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2위에 머무르며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랄로는 생계를 위해 전업 작곡가의 길을 잠시 접기로 한다. 그해 랄로는 ‘아르맹고 4중주단’을 결성해 초기에는 비올라 주자로, 후에는 제2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다. 1852년 30세를 목전에 둔 랄로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잡기 위해 ‘로마대상’에 도전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2위에 그치고 만다. 전업 작곡가를 열망하던 랄로였지만 생계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현악 연주자와 레슨 선생으로 근근이 배고픈 작곡가의 삶을 살아 나간다.
32세가 되던 1855년, 세상 누구도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지 않자 랄로는 결국 작곡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음악 교사의 길로 접어든다. 42세에 랄로는 쥘리 베스니에 드 말라니라는 소프라노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생활은 랄로에게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선사해줬고 창작열은 다시금 불타올랐다. 1869년, 그는 다시 펜을 들었고 공모전에 출품한 오페라 ‘피에스크’로 당당히 3위에 입상했다. 이어 1873년 오케스트라를 위한 ‘디베르티스망’을 발표하며 마침내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동료 작곡가들은 이미 원숙기에 접어들 나이었지만 랄로는 50세가 돼서야 자신의 작품과 이름을 알릴 첫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이듬해인 1874년엔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발표해 연이은 호평을 받았고, 52세가 되던 해인 1875년 ‘스페인 교향곡’은 당대 최고의 비르투오소(명연주자) 사라사테에 의해 초연되며 대성공을 거뒀다. 65세가 되던 1888년엔 오페라 ‘이스의 왕’을 무대에 올려 관중의 열광 속에 연 100회 이상 공연되는 흥행을 올렸다. 50세부터 시작된 그의 왕성한 활동은 노년까지 이어졌으며 오페라 ‘라 자크리’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1892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오늘의 추천곡 - ‘스페인 교향곡’
에두아르 랄로의 명성을 드높인 히트작이자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스페인 교향곡’을 흔히 교향곡으로 혼동하기도 하는데, 바이올린 협주곡 형식에 가까운 작품이다. 형식적 특이점으론, 보통의 협주곡들이 3악장의 형식을 취하는 반면 이 곡은 여러 춤곡을 모아 놓은 모음곡 형식으로 총 5악장이라는 점이다. 랄로는 그가 남긴 4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1번을 제외하곤 3번에는 ‘노르웨이 환상곡’, 4번에는 ‘러시아 협주곡’이란 제목을 붙여 놓음으로써 창작의 모티브가 이국적 정취에 근거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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