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6) 종이 탑승권
환승 많아지자 1970년대 규격 통일… 마그네틱 보딩패스 1장 발급비용 1만원 달해 2010년 바코드로 바꿔
美 실시간 방공 요격시스템 개발자가 항공예약관리 기술 맡아… 모바일 도입 빨라졌지만 여권 사이 끼워두는 묘한 설렘은 사라져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범세계적 재난을 겪으며 많은 이가 그리워하는 것 중 하나는 분명 여행의 설렘일 것이다. 숨 가쁘게 바뀌며 항공기의 일정을 알리는 스크린들, 공항 터미널에서의 헤어짐과 만남, 그리고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는 항공기들. 우리를 물리적으로 새로운 공간으로 안내하는 입구이자 출구인 그 거대한 인프라는 정교하고도 복잡한 네트워크지만, 이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기술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또 진화한다.
항공기를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복잡한 기계장치 중 승객의 입장에서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바로 재떨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예전 항공기에는 거의 모든 자리마다 재떨이가 있었고, 좌석은 흡연석과 비흡연석이 구분돼 있었다. 세계적으로 항공업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기내 흡연을 금지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2000년부터 기내에서 흡연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여전히 항공기의 어딘가에는 반드시 재떨이가 설치돼 있다. 설령 새로 도입된 신형 항공기라도 말이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여전히 최소 한 개 이상의 재떨이를 화장실 문에 설치할 것을 규정(14 CFR § 25.853)하고 있고, 국내 항공안전법상 기준이 되는 항공기 기술기준(25.853.g)에서도 화장실 문에 재떨이를 ‘눈에 잘 띄게 설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화장실에 재떨이가 없는 비행기는 안전상 결격 사유가 생긴 것으로 보고 이륙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규정은 혹시 기내 흡연을 시도하는 사람이 쓰레기통에 담뱃재를 버린 후 발생할 수 있는 기내 화재와 같은 사고를 고려해 오래전 만들어진 규정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확률일지라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최대한 모든 조치를 하는 항공 시스템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한편, 또 하나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초록색 여권 사이에 겹쳐 놓으면 여행이 비로소 시작되는 느낌을 주던 보딩패스다. 보딩패스의 역사는 당연하게도 1920년대 항공산업이 태동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에 이르자 각각 다른 형태의 보딩패스를 발급하던 개별 항공사들은 연계항공권 발급을 위해 표준화된 보딩패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세계 항공사의 연합체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International Air Transport Association)는 수기 형태의 보딩패스 표준을 정한다. 1970년대 세계적으로 항공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며 제정된 것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의 3×7인치 사이즈 보딩패스다. 항공 보딩패스의 특이한 점은 다른 그 어떤 탈것의 탑승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가 포함돼 있다는 점인데, IATA의 현재 규정에 따르면 종이 탑승권에는 30여 가지의 정보가 수록돼야 한다. 승객의 이름, 편명, 행선지, 기내식, 환승 여부, 도착시간, 판매가격, 세금정보, 체크인 시각, 그리고 이 모든 정보를 스캔할 수 있는 바코드 등이다.

보딩패스에는 왜 그렇게 많은 정보가 들어가야만 할까? 바로 연결 탑승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항공 산업의 특징 때문이다. 초창기의 항공기들은 거리가 짧은 도시 간을 연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촘촘히 세계를 연결하는 항공 네트워크를 갖춘 지금에도 각각의 다른 도시, 다른 나라를 연결하는 노선을 개별 항공사가 모두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승객이 직항이 없는 구간을 여행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워싱턴DC로 여행해야 한다고 할 때, 최악의 경우 파리-런던, 런던-뉴욕, 뉴욕-워싱턴DC를 거쳐 여행해야 하고, 이는 각각 세 개의 보딩패스, 세 개의 항공사를 거쳐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딩패스는 이 여행자가 거쳐 가는 여정에서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요금은 어떤 좌석 수준에 맞게 지불했는지 등 이 승객이 보딩패스를 구매한 항공사만이 아니라 여행 중 거치는 모든 항공사가 봐야 하는 여정 증명서가 된다. 또 빈번하게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한 결항 및 연착 상황에서 보딩패스는 승객의 남은 여정을 보장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3×7인치 보딩패스의 탄생은 1970년대 급격히 확장된 항공산업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항공서비스 이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항공사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모든 항공기의 좌석을 효율적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기차와는 달리 항공편의 운항일정은 크고 작게 시시각각 변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항공사들은 모든 항공편에 최대한 많은 승객을 태워 이륙해야 한다. 따라서 기차 승객처럼 간단히 ‘좌석’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여정’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항공편의 운항일정을 반영할 수 있는 ‘실시간 시스템’이 필요하다. 컴퓨터 시스템이 고도화된 지금에야 실시간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상업용 컴퓨터가 막 소개돼 자기 테이프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기초적인 네트워크의 개념이 태동하던 1950∼1960년대에는 여러 항공사의 모든 항공편 운행현황, 예약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낸다는 것은 매우 큰 기술적 도전이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이 SABRE/PARS 시스템을 근간으로 항공사 간 예약이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보딩패스는 이 복잡한 예약 정보들을 기록하는 매체로 이용됐다. 그런데 보딩패스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항공 연계를 위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기록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여정 과정에서 작게 쓰인 정보들을 파악하고 읽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1980년대 IATA는 마그네틱 코드를 이용한 보딩패스 표준을 정했다. 보딩패스의 뒷면에 인쇄된 마그네틱테이프에 필요한 정보가 기재돼 있고, 발급과정이나 탑승과정에서 마그네틱 코드를 읽어내는 장비를 전 세계 거의 모든 항공사가 도입해 수십 년간 사용했다. 그런데 이 마그네틱 코드의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니, 바로 무려 장당 1만 원에 육박한 발급 가격이었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전 세계 항공여객 이용자는 연인원 2억 명을 가뿐히 넘어서게 됐고, 이는 보딩패스의 발급 비용만 연간 20억 달러 이상, 즉 2조 원가량이 소모됐다는 뜻이 된다. IATA는 마그네틱 코드를 바코드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확대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전 세계 모든 항공사가 바코드 기반 보딩패스로 전환을 완료했다. 바코드 전환을 완료한 이후 마그네틱 기반 보딩패스의 발급을 중단하는 한편, 모바일 보딩패스를 더 널리 보급해 종이 보딩패스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전 세계 200여 개 항공사 및 3000여 개 공항은 완전한 디지털 전환을 꿈꾸고 있다.

박동오 실리콘밸리
기술정책자문
■ 용어설명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 전환(DT)은 디지털 기술을 모든 비즈니스 영역에 적용해 비즈니스 운영 방식과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과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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