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태윤의 Deep Read - 중앙은행의 독립성
韓銀 동원한 소상공인·채권 매입론까지 솔솔… 아르헨티나, 중앙銀 동원한 방만 재정에 경제 파탄
근대 중앙은행史는 정부로부터의 ‘독립의 역사’… 정치 압력서 중앙銀 구해야 국민의 재산·삶 파괴 막아
발권력을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개인의 재산과 삶을 경제위기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게 만든다. 중앙은행을 정치적 압력에서 구해내야 한다.
◇중앙은행 독립의 역사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물가안정이라고 부르는 대내적인 화폐가치의 안정성이고, 한국과 같은 개방경제에서는 물가 이외에도 대외적 가치를 의미하는 환율의 안정성도 있다. 그런데 발권력이 정치적인 목적에 사용된다고 간주되거나 그렇게 활용되는 순간 물가나 환율은 폭등하고 불안정해져 국민의 경제적인 삶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앙은행의 역사는 지급·결제 기능이 있는 안정적인 화폐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독립적인 발권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함부로 돈을 찍어내지 않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이나 압력으로부터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독립하는 것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대적인 중앙은행의 최초 모습으로 평가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행(Bank of Amsterdam)’도 출발은 은행권, 즉 은행에서 발행한 증서 개념을 통해 안정적인 화폐가치의 지급·결제가 국내외에서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흔히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으로 평가하는 ‘스웨덴중앙은행(Sveriges Riksbank)’ 역시 국왕의 정치적인 개입으로부터 화폐가치를 유지한다는 맥락과 연결되며 발전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중앙은행들은 대부분 국왕의 전비(戰費) 조달과 같은 재정 소요로부터 독립해 화폐가치를 유지하는 과정, 결국 화폐로 된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과정에서 발전했던 것이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린 독일이나 엄청난 물가상승률을 겪은 이스라엘(1983∼85년), 폴란드(1989∼90년), 브라질(1987∼94년) 그리고 수천% 물가상승률을 경험한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대부분 국가에서 중앙은행이 독립적이지 않았던 사실은 경제학 분야의 여러 실증 연구에서 확인된다.
◇정부의 차입 제한이 요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를 포함해 대부분 국가에 중앙은행이 설립되고 독립 주권국가의 상징처럼 자국 화폐를 발행하지만, 그 자체가 반드시 정치적인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지는 못했다. 정치적인 압력에 취약한 발권력 활용은 화폐가치의 안정성을 잃어버리게 하면서, 물가상승과 환율의 불안정성은 중요한 경제 위험요소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973년 미국이 ‘금태환’을 중지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기 전까지는 금과 달러에 기초해 자국 통화를 발행하는 고정환율제도였기 때문에 개별국가가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찍어내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거나 화폐가치 불안정성에 노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특히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1970∼1980년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 많은 국가에서 금이나 달러에 연계되지 않은 발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게 된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까지도 법적으로 독립성을 확보한 중앙은행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독일의 분데스방크, 그리고 스위스 국립은행 정도에 그쳤지만, 많은 국가에서 중앙은행 조직과 기능 자체를 행정부에서 법적으로 독립시키는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실질적인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는 중앙은행 조직이 행정부로부터 독립하는 건 물론이고 기능과 역할에서 독립적인 게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건 행정부가 중앙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걸 제한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중앙은행에서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을 특정 목적의 지출을 위한 재원 조달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그런 직무와 역할에 충실한 당국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는 의미다.
◇대중영합주의와 경제위기
최근까지도 정치적인 압력에 노출된 중앙은행의 총재가 수난을 겪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는 경제위기에 노출된 사례가 있는데,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마르틴 레드라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는 2010년 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유명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사실상 전 국민 대상 보조금 지급을 계속한 후 재원 마련을 위해 국민연금 자금을 동원하고 중앙은행 보유 외환 사용을 요청했는데 이를 중앙은행 총재가 거절하자 해임한 것이다.
후임인 메르세데스 마르코 델 폰트 총재 때도 인플레이션과 화폐가치 하락 등 외환시장 혼란이 계속됐고, 그 뒤에 임명된 후안 카를로스 파브레가 총재도 취임 1년 후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공개 비판을 받고 중도 사임했다. 이 와중에 아르헨티나는 대규모 공무원 증원과 공공 지출 확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끝 모를 경제위기에 빠져들었다.
2015년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시장 친화 정책을 내세우고 집권했으나 집권 기간 내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한 채 2019년 선거에 패했고, 대중영합적인 정책과 함께 페론주의의 계승을 천명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부통령으로 정권에 복귀하면서 취임한 지 1년 된 중앙은행 총재 기도 샌들러리스가 또다시 사임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압력에서 독립적이어야 할 중앙은행 총재가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아르헨티나에서 경제위기가 계속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방만한 재정 사용에 따른 재정위기가 발생하고, 방만한 정부지출 재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에 노출되며 만성적인 경제위기 구조를 형성했는데, 결국 이런 구조가 중앙은행의 수난사로 나타났다.
◇공짜 돈 유혹과 파국
정치적인 압력에서 중앙은행을 자유롭게 하고 발권력의 독립성을 지키며 전문성에 기초해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화폐가치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민의 재산과 삶을 경제위기로부터 지키는 근본적인 출발점이다. 공짜 돈을 찍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발권력의 정치적인 활용에 대한 유혹이 지배하는 경제는 위기로 갈 수밖에 없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세줄 요약
중앙은행 독립의 역사 : 여당 내에서 나오는 “중앙은행의 무제한 발권력 동원” 제안은 위험한 주장. 암스테르담은행 등 근대 중앙은행의 역사는 안정적인 화폐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독립적인 발권력을 확보하는 역사였음.
정부의 차입 제한이 요체 : 중앙은행의 실질적인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는 조직을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킴은 물론, 기능과 역할에서도 완전히 독립해야 함. 가장 중요한 건 행정부가 중앙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걸 제한하는 것임.
대중영합주의와 경제위기 : 중앙은행이 독립적이지 않은 나라가 경제위기를 겪는 것은 여러 실증 연구에서 확인. 공짜 돈 뿌리기, 즉 발권력의 정치적인 활용에 대한 유혹이 지배하는 경제는 위기로 갈 수밖에 없음.
■ 용어 설명
‘암스테르담은행’은 근대 은행 기능의 원형을 형성한 은행. 16세기 유럽의 상업 및 금융 중심지로 발전한 암스테르담에 설립됐는데, 후일 동인도회사 대부금 누적에 따른 경영 악화로 1819년 폐쇄.
‘브레턴우즈 체제’는 1944년 미국 브레턴우즈에 모인 연합국 회의에서 탄생한 국제통화체제. 초창기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는 금태환을 실시했으나 후에 닉슨 미 대통령이 금태환 중지를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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