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 공주, 약혼자 母 돈문제로
비방 보도·비판 여론 쏟아져
최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
마사코 왕비, 적응장애로 요양
하버드대 출신 엘리트 외교관
‘생리주기’ ‘유산’까지 보도돼
미치코 상왕비, 신경쇠약 증세
평민 출신… 왕족들이 따돌림
몇십년간 투명인간 취급 당해
“마코(眞子) 공주는 결혼에 대한 국민적 비난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습니다.”
일본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이 논란 끝에 오는 26일 일반인 남자친구와 혼인 신고를 할 예정인 마코 공주가 PTSD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1일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왕실 건강 문제를 전담하는 관동병원 측도 같은 날 “마코 공주가 3년 넘게 자신과 남자친구, 양가 가족에 대한 비난을 들으며 존엄성이 짓밟히는 느낌을 받아왔다”며 이를 재확인했다.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카인 마코 공주의 정신건강 문제가 불거진 뒤 지금 일본에서는 외교관으로 일하다가 왕실에 시집와 ‘적응장애’로 10년간 요양한 마사코(雅子) 왕비와 고된 시집살이로 ‘실어증’을 앓았던 미치코(美智子) 상왕비 등 3대를 잇는 일본 왕실 여성의 정신건강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공주의 남자’ 모친은 ‘빚투’…영혼까지 턴 주간지 = 일본의 왕위 계승 순위 1위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후미히토(文仁) 왕세제의 장녀인 마코 공주는 지난 2017년 9월 대학 동창인 고무로 게이(小室圭)와 약혼을 발표하며 이듬해인 2018년 11월 결혼하겠다는 일정을 밝혔다. 국제기독교대(ICU) 캠퍼스커플(CC)인 두 사람의 결혼 발표는 가쿠슈인(學習院)대 CC로 시작해 부부의 연을 맺은 후미히토 왕세제와 기코(紀子) 왕세제비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약혼 발표 이후 고무로의 어머니가 전 약혼자와의 채무 문제에 휘말려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며 두 사람의 결혼에는 급제동이 걸렸다. 고무로의 어머니 고무로 가요(小室佳代)가 옛 애인에게 고무로의 대학등록금 및 생활비 명목으로 400만 엔(약 4150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았고, 이후에도 “증여받은 돈”이라고 해명했다가 불똥이 아들 고무로에게 튄 것. 게다가 가요가 일본 왕실에 금전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지자 여론은 분노했다.
일각에서는 고무로가 마코 공주의 명예와 재력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마코 공주가 결혼하게 되면 품위 유지 명목으로 최대 1억5250만 엔의 일시금이 지급된다는 게 알려지자 ‘국민 세금으로 고무로 일가의 빚을 갚아주는 거냐’는 반대 여론이 거세졌다. 한번 시작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2018년 2월 궁내청은 시간적 여유를 이유로 들며 결혼 연기를 발표했다. 고무로 일가의 비상식적인 사생활 보도가 이어지자 국민 여론의 화살이 약혼 발표 전 신원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마코 공주의 부모인 후미히토 왕세제 부부에게까지 향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후미히토 왕세제부부는 차기 일왕인 히사히토(悠仁) 왕자의 부모이기에 ‘딸 결혼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 하는 왕세제가 차기 일왕을 제대로 교육하겠냐’는 자질론으로까지 번졌다.
비난 여론은 마코 공주의 마음을 할퀴었다. 약혼을 보류한 4년 동안 온갖 비방성 보도와 비난 댓글에 시달리다가 복합성 PTSD 진단을 받은 것. 결국 마코 공주는 왕실의 자금 지원도 포기하고, 불명예스럽게 왕실을 떠나 도망가듯 미국으로 건너가 신접살림을 차리게 됐다. 후미히토 왕세제도 더 이상 마코 공주를 말릴 수 없었다. 왕실과 가까운 한 관계자는 “아버지로서는 딸의 건강 상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남존여비’ 속 궁내청의 방관…왕실 여성의 숨통을 조이다 = 사실 일본 왕실의 ‘여성 잔혹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장 마사코 왕비부터가 희생자였다. 2004년 왕세자 신분의 나루히토 일왕도 유럽 순방 전 기자회견에서 아내 마사코가 왕실 내에서 ‘인격 부정’을 당하고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당시 나루히토 왕세자는 “마사코는 외교관 일을 그만두고 왕실에서 국제친선 일을 하고 싶어 했지만, 외국 방문이 허락되지 않아 매우 고생하고 있다. 마사코의 커리어(경력)와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던 것도 사실”이라고 폭로한 것. 원인은 왕실의 마사코 당시 왕세자비에 대한 아들 출산 강요였다. 미 하버드대와 일본 도쿄(東京)대 출신의 엘리트 외교관이었던 마사코는 결혼 뒤 8년간 출산하지 못하면서 ‘불임 왕세자비’라는 비난을 받아왔고, 극우세력은 ‘왕세자가 젊은 여자와 재혼해 후계를 이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마사코의 ‘생리 주기’ ‘유산’과 같은 민감한 사생활도 일본 주간지의 단골 소재가 됐다. 마사코가 결혼 8년 만에 아이코(愛子) 공주를 낳은 뒤에도 ‘남성 왕위계승’만 인정하는 왕실은 마사코의 해외 순방을 금지하며 아들 출산을 강요했고, 결국 마사코는 불면증·수면장애에 시달린 지 3년 만에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마사코 왕비의 시어머니인 미치코 상왕비 역시 1959년 최초의 평민 출신 왕세자비가 된 이후 왕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으며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 ‘미치붐’이라고 불리며 일본 여성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미치코 상왕비는 왕족 출신인 시어머니 고준(香淳) 왕비에게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멸당했고, 보수적인 왕족·화족들 역시 대중적 인기가 높은 미치코 상왕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미치코 상왕비는 왕실 여성들에게 ‘드레스코드’를 제대로 안내받지 못해 혼자 튀는 옷차림을 하거나,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등 몇십 년간 왕실 내에서 정신적 고통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부갈등에 대한 주간지의 자극적 보도까지 이어지자 미치코 상왕비는 수차례 신경쇠약 증세를 나타냈고 1993년에는 실어증에 걸려 장기 요양을 했다. 미치코 상왕비는 2007년 “매 순간 슬픔과 불안감에 사로잡혔고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기도를 하거나 유치한 주문을 중얼거리기도 했다”며 회한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치코 상왕비-마사코 왕비-마코 공주로 30년째 이어지는 일본 왕실 비극의 원인으로는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의 남존여비 사상에 기반한 방관적 자세와 왕실 관련 루머를 생산해온 주간지 보도가 꼽힌다. 자극적인 보도와 비방성 악플 공격의 악순환이 여성 왕족에게 집중된 것. 일련의 상황에 대해 궁내청은 명확한 대응을 하지 않았고, 왕실 여성들은 대중의 먹잇감이 됐다. 이는 일본 내 ‘여권(女權)’이 현저히 낮은 현실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에 왕실에 정신과 전문의 등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궁내청 조직에 대해서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보수적 일본 사회에서는 요원한 일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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