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건국대 교수가 최근 서울 광진구 연구실에서 한국인들이 자녀 교육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하지현 건국대 교수가 최근 서울 광진구 연구실에서 한국인들이 자녀 교육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한국인의 마음 - 우리를 이해하는 7개의 질문

⑤ 정신의학 전문의 하지현이 말하는 ‘무엇에 집착하나’

감정의 브레이크 고장난 ‘집착’
절박함·열등감·욕망서 비롯돼

학벌중심 한국인의 ‘교육 집착’
공정·불공정 감각도 무너뜨려
정서상실 ‘공부 기계’ 양산하고
부모 세대 노후 망가뜨리기도


“자녀 교육은 과거와 달리 ‘가성비’가 떨어지는 투자입니다. 부모가 ‘100’ 가운데 최소한 ‘51’은 자기 삶을 돌보는 데 투자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집착’의 근원에 ‘교육’이 있다고 했다. 각자 다른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을 ‘공부의 세계’로 등 떠미는 사회가 경쟁에서 탈락한 대다수의 마음에 절망과 박탈감을 새긴다는 것이다.

그는 또 청년 실업을 비롯해 부동산 광풍, 급증하는 우울증 환자, 노인 빈곤 등 모든 사회 현안의 중심에 ‘공부 중독’이 있다고 진단한다. 하 교수는 30년 가까이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해온 ‘정신건강 지킴이’이자 ‘고민이 고민입니다’ ‘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서재’ 등의 책을 쓴 파워라이터. 최근 건국대 연구실에서 하 교수를 만나 가성비 낮은 교육에 대한 ‘집착’을 벗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 법을 들었다.

―정신건강의학 관점에서 ‘집착’은 어떤 상태인가.

“집착은 의학 용어는 아니다. 다만 환자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그만두고 싶은데 멈출 수 없을 때 ‘집착한다’고 진단한다. ‘마음의 브레이크’가 고장 나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다. 인지적 측면에서 ‘강박’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고, 행위적으로는 집착이 심해지면 ‘중독’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기대 이상의 ‘강한 보상’을 받으면 뇌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물질인 ‘도파민’이 강하게 분출된다. 큰 보상을 안겨준 행위를 반복하지 않으면 공허함에 빠지고, 다른 행동을 통해선 그만큼의 쾌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집착을 낳는 심리적 동기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뒤에서 늑대가 쫓아오는 듯한’ 절박함이다. 이런 절박함에서 비롯된 집착은 비합리적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옆에 있는 저 사람보다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쟤가 명품을 사면 나도 사야지, 쟤가 새 차를 뽑으면 나도 뽑아야지’라는 ‘비교’의 층위에서 생기는 감정이다.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열등감 콤플렉스에서 집착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좀 더 고차원적인 것으로 ‘이상’과 ‘욕망’에 대한 추구다. 뒤나 옆이 아닌 ‘앞’을 내다보며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 것이다. 자신의 집착이 ‘앞’ ‘뒤’ ‘옆’ 가운데 어디서 온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를 상담했다. 한국인들이 ‘교육’에 집착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나.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 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 이전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어린 나이 때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서너 살만 되면 영어유치원에 보내 월 100만 원씩 쓰는 부모가 흔하다. 맘카페엔 ‘내 소득이 얼마인데, 우리 아기 영유(영어 유치원) 보내도 될까요?’라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빚을 내서라도 ‘아이 공부’에 투자하고, 재력이 넉넉하면 ‘영어유치원-사립초등학교-국제학교’ 코스를 고민한다. 온 가족이 자녀에게 매달리는 ‘집중 육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마음 고통’엔 ‘공부’라는 공통분모가 자리하고 있다.”

하 교수가 지난 2015년 출간한 ‘공부 중독’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다. 하 교수는 사회학자 엄기호와 함께 교육 현실을 진단한 대담집에서 “공부라는 담론이 ‘진공청소기’ 같은 역할을 하면서 나라 전체가 ‘공부 중독’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인들이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이유는 뭘까.

“40∼60대 부모 세대가 ‘공부’를 통해 ‘강한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주변에서 그런 ‘성공담’을 숱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간 부모 세대는 ‘교육’이라는 상징자본으로 손쉽게 ‘중산층’이 됐다. 또 역사적으로는 ‘사농공상’ 문화를 거론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한 입신양명에 뿌리 깊은 동경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만 해도 ‘7대째 포목상’을 하는 집안이 흔하지만, ‘공부로 출세해야 한다’는 욕망이 지배적인 한국에선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흐름을 놓쳐 소외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를 일컫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집착을 낳는다. 혼자 빠져나갔다간 혼자 불리해질 것이라는 두려움 탓에 그만두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교육 집착’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나.

“‘공정’과 ‘불공정’의 경계에 대한 감각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진영에 따라 두 동강 낸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불법임이 명확한) 인턴증명서·표창장 위조에 대해 한쪽에선 ‘애를 키우다 보면 약간의 탈법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느 부모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며 변호한다. 보편적 상식이 모호해지고, 불법과 탈법의 기준이 희미해지면 ‘판돈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의 구조가 굳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의 교육 집착이 ‘정서적 감응력’이 없는 ‘공부하는 기계’만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똑똑한’ 젊은 판사들이 간혹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놓는 것은 이런 부작용의 결과다.”

하 교수는 ‘공부 중독’에서 한국사회의 부동산 광풍 역시 교육 집착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과도한 교육열 탓에 부동산 시장의 가치가 ‘학군’에 의해 결정되고, 이로 인한 주거비 상승이 부모 재력에 따라 학력 격차가 벌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는 “점수로 대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것과 학군으로 아파트를 줄 세우는 것은 동일한 작동 원리”라며 “자녀가 특목고나 자사고에 갈 실력이 안 되면 학군이라는 ‘환경’을 선물해서라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돕는다”고 말한다.

―학벌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교육’이 그만한 가치가 있어 투자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대학 졸업장만 따면 좋은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던 수십 년 전과 달리 지금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형편없다. 투자 가치가 높다면 ‘청년 실업’이니 ‘N포 세대’니 하는 말이 왜 생기겠나. 생산적으로 사용돼야 할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꼴이다. 게다가 ‘가성비 떨어지는 투자’는 부모 세대의 노후마저 망가뜨린다. 젊은 세대의 절망감, 집값 폭등, 노후 빈곤 등 모든 사회 문제의 ‘핵심 고리’에 공부가 있다.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난맥’ 같은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할까.

“제도와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개선해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가 최소한 ‘51’은 자기 삶을 돌보는 데 투자하고, 나머지 ‘49’를 자식을 위해 쏟는 에너지로 활용해야 한다. ‘아이=80, 나=20’이 아니라 자신이 ‘51%의 지분’으로 삶의 ‘대주주’가 되자는 것이다. 지금 당장, 그리고 미래에 닥칠 노후에 ‘내 욕구를 충족시킬 준비가 돼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이후 형편에 따라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면.

“환자들에게 욕구(need)와 욕망(desire)을 구별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욕구’는 기본적 의식주처럼 생명체로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추구하는 감정이다. 반면 ‘욕망’은 ‘먹고 살 만한’ 생명체가 ‘이왕이면 더 좋은 걸 갖고 싶고,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욕구와 욕망이 한 덩어리가 돼 있으면 욕망을 추구하다 실패할 경우 ‘0’이 돼버린 듯한 두려움에 빠진다. 하지만 욕망을 ‘플러스 알파’라고 생각하면 실패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

‘한국인의 마음’은 문화일보 문화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마음’은 문화일보 문화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하 교수는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선 ‘장기적 계획’을 세우기보다 상황에 따라 ‘오픈 마인드’로 대응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흔히 바둑을 둘 때 ‘다섯 수 앞을 내다본다’는 말을 한다”며 “변하지 않는 환경에서 정해진 규칙대로만 진행되는 바둑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불확실성이 높은 세상에서 구체적 계획을 세우는 건 위험한 ‘초이스’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큰 방향성만 정해놓고, 멀지 않은 앞으로의 석 달 혹은 1년 정도의 시간 안에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집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하지현의 리스트

“강박증 벗어던지는데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좋아”


“자기감정에만 몰두하는 집착은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강박’에서 벗어나 느긋하고 따뜻한 여유를 얻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현 교수가 추천하는 첫 번째 ‘리스트’는 잭 니컬슨 주연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다. 지난 1998년 개봉한 이 작품은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규칙 속에 살아가는 소설가 멜빈이 주인공이다. 멜빈은 귀가 후엔 문고리를 아래위로 다섯 번이나 돌려 확인하고,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경계선을 절대 밟지 않는다. 이런 집착과 강박증으로 본인만 ‘피곤’해지는 게 아니다. 주변 사람들 역시 불안을 감추려는 멜빈의 거친 말과 행동 때문에 마음을 다친다.

하 교수는 “이 영화가 오랜 세월 사랑받는 건 독특한 ‘외골수’ 캐릭터 안에 우리와 다르지 않은 ‘보편적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도 차가 있을 뿐 누구나 ‘사랑’이든 ‘돈’이든 ‘자식’이든 무언가에 집착을 하잖아요. 멜빈을 보며 ‘내 집착이 저 정도는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웃음)” 자기중심적 울타리에 갇혀 있던 멜빈은 캐롤이라는 여성을 만나 세상과 ‘화해’하는 법을 배운다. 그는 캐롤 덕분에 ‘사랑한다’는 흔한 말을 이렇게 돌려 말할 줄 아는 달콤한 로맨티스트로 변했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하 교수는 멜빈의 이 유명한 대사에 대해 “생각과 취향이 다른 이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타인의 선한 자극’만큼 ‘나의 좁은 세계’를 열어주는 건 없다”고 멋진 주석을 달았다.

집착을 이기는 ‘행동의 리스트’로는 가벼운 산책을 꼽았다. 하 교수는 “많은 사람이 ‘좋은 생각을 해라’ ‘의지로 극복해라’는 조언을 건네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스님’들도 쉽지 않다”고 했다. “생각은 생각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집착과 강박으로 힘들어지면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하 교수는 틈날 때마다 가까운 공원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30분’ 정도 ‘빨리’ 걸어보라고 권한다. ‘좋아하는 음악’은 친숙한 감정으로 긴장을 풀어주고, ‘속보(速步)’라는 목적 있는 걷기는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이다. “음악과 함께 산책에 집중하면 어느 순간 ‘사유의 wandering(정처 없는 방랑)’이 일어납니다. 복잡한 생각이 ‘리셋’되며 앞날을 새로 기획하는 즐거운 통찰이 솟아나는 겁니다. 멀리 제주도까지 가서 ‘한 달 살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 30분의 ‘마이크로 브레이크’면 충분히 마음의 평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