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종의 시화기행 - (92) 비 내리는 로마의 밤
공항을 나서자마자 몰려드는 택시 호객꾼들
어려워진 나라 살림마냥 드문드문 켜진 도로 조명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 쉼없이 떠들어대는 젊은 운전기사
오랜 세월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찾은 이 도시
괴테도 니체도 감격해 묵직한 책 한권 남겼던 유럽의 근원
적막하기 그지없는 이곳서 피정처럼 떠나는 시간여행
알 이탈리아를 타고 밤 비행기로 로마에 내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FCO·Leonardo da Vinci Fiumicino Airport), 비행 내내 한 여행자가 수염 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현전으로 만나는 영화를 봤던 터여서 비행기에서부터 이미 로마 체험은 시작됐다. 다시 한 번 정치는 일시적으로 힘이 세지만 문화는 오래도록 힘이 세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긴 다빈치는 영화뿐 아니라 로마에서도 여전히 현전하다. 로마에서뿐 아니라 현전하는 인류사이기도 하니까.
호객꾼들이 몰려들며 속삭이듯 혹은 간절한 목소리로 자기 차를 타잔다. 그 사이로 재빠르게 한 청년이 당당하게 내 가방을 낚아채며 앞장을 선다. 핸들을 잡자마자 쉼 없이 떠들어대는 사내. 예전에 로마에 왔을 땐 이런 풍경이 아니었다. 그만큼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 탓일까. 도로 양쪽으로는 끝없는 들판, 드문드문 켜진 가난한 불빛. 마치 아바나에라도 온 듯 멀리서 번져오는 희미한 불빛은 그러나 아늑해 보인다. 도시에 부가 부풀어 오른다 싶으면 과도하게 불빛을 토해내는데 저 희미한 불빛들은 노쇠한 천년제국의 오늘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사내는 뚝뚝 끊어지는 영어로 쉼 없이 떠들어대는데 차는 키 큰 소나무들과 무너진 성벽들의 옛 도로로 접어든다.
가는 빗줄기와 함께 폐허 같은 유적지 군데군데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애잔하다. 힘을 다한 옛 로마의 마지막 숨결 같다. 신도 검투사의 환호성도 사라진 적막한 옛길을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 대신 이탈리아 사내의 장황한 수다를 들으며 택시로 달린다. 군데군데 무너진 담과 그 담을 비추는 불빛이 시내 전체를 고성(孤城)처럼 보이게 한다. 세상을 호령하던 천년제국, 달빛에 부딪히던 칼과 창의 소리는 어디로 다 갔을까. 피 흘림과 환호의 역사는 사라지고 오래된 묘목 같은 도시 속에서 이제 옛 도시는 이야기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려니 했지만 너무했다. 젊은 기사는 스마트폰의 요금 내역서를 보여준다. 240 하고도 몇 유로가 붙어 있다. 호객을 당했을 때 이미 얼마를 더 얹어줘야겠거니 했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싶다. 67유로면 올 수 있는 거리였다. 조용히 항의했지만 막무가내다. 잠시 후 어디선가 훨씬 나이 든 사내가 차 문을 열어주면서 200만 내란다. 150을 내밀었더니 “리얼 젠틀맨”이란다.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이 금액에 토막토막이나마 역사문화의 강의를 들으며 로마로 입성한 데다 신의 축복까지 얻어냈으니 나쁜 가격은 아니지 싶다. 하지만 바로 옆 호텔에 들어와 사정을 말했더니 저 사람들, 신고할까 봐 일부러 호텔 앞에 차를 안 세우는 거라며 로마의 수치란다. 글쎄 수치일 것까지야.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운전대 옆 두 살이 됐다는 예쁜 딸아이 사진이 떠올랐다. 더구나 받은 금액을 호객꾼과도 나눠야 할 터다. 사는 일이라는 게 너나없이 조금쯤 수치스럽고 비굴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행인 것은 조금 전 로마의 옛 도로를 지나면서 기사가 그야말로 숨도 안 쉬고 떠들어댄 말들이, 이후 로마에 머무는 동안 흑백필름처럼 떠오르곤 했다는 점이다. 거리를 걸으면서 얼핏얼핏 저것은 카라칼라 황제가 지은 것, 저것은 미켈란젤로가 만든 계단, 저곳은 영화 벤허를 촬영했던 곳, 이런 식으로 들었던 그날 밤 해설 속 역사 이야기의 페이지가 현장을 걸을 때마다 차곡차곡 넘겨지고 있었으니까. 일본의 저명 작가 이노우에야스시(井上靖) 생전에 그와 함께하는 중국 여행이라는 것이 있었다. 일본 사소설의 세계를 훌쩍 넘어 그는 중국이나 고려 같은 인접 나라 소재의 스펙트럼이 큰 역사소설을 많이 남겼던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중국 여행은 엄청난 가격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로마의 수다쟁이 기사를 통해 잠시나마 옛 로마의 현장을 누비며 듣는 로마 이야기가 아무렴 100유로쯤은 되지 않겠는가.
호텔 코르소(Corso) 291. 작지만 제목처럼 세련되고 정갈했다. 무엇보다 주인인 듯한 젊은 여성이, 직접 경영하는 일본 식당에 들어선 것처럼 친절하다. 창밖으로는 광장을 비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통일 기념관이 보인다. 자, 로마다. 오랜 세월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찾은 이곳.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도 감격해 이탈리아 기행의 묵직한 책 한 권을 남겼을 만큼 유럽인의 마음의 고향이자 근원이고 젖줄이라는 이곳. 이제부터 나는 어디로 가고 무엇을 볼 것인가. 룸의 하얀 원탁에 웰컴 드링크로 미리 놓여 있던 샴페인의 뚜껑을 연다. 창밖엔 여전히 빗줄기가 떨어지고, 건너편 건물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간접조명 아래로 간간이 우산을 쓰고 포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도시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그렇다. 나는 며칠간 피정을 떠나온 듯 우선 도시를 보고 그다음에는 미뤄두기만 했던 내면으로의 시간여행을 해보리라.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 위대한 로마의 주역이 된 예술가들
시스티나 성당 ‘천지창조’ 그린 미켈란젤로
바티칸 명화 ‘아테네학당’의 화가 라파엘로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황제, 장군, 학자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오랫동안 폐허처럼 버려지다시피 했던 그 옛날의 로마. 베드로가 순교했던 그 기독교 박해의 본산에 바로 베드로의 이름을 딴 대성당이 들어서면서 고대 로마의 신전이 있던 자리에는 속속 성당과 저택들이 들어섰고, 일군의 조각가와 화가가 함께 그 이름을 드러내게 된다.
우선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그림)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원래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자 로렌조’ 수하의 소년 예술가였지만 약관에 로마의 한 추기경과 연이 닿아서 걸작 피에타를 대리석으로 제작한 이후 찬사를 한 몸에 받고 로마 교황청의 중심 예술가가 된다.
불과 37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아테네 학당’을 그린 라파엘로(1483∼1520) 또한 뛰어난 예술성과 외모로 미켈란젤로와 그 재능을 겨룰 정도의 천재였다. 그를 로마로 불러들인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1444∼1514) 역시 새로운 로마의 설계자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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