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고문

맨발의 작가는 전시장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분필을 쥐고 계속 흰 선(線)을 가로로 그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발바닥이 지나간 자리는 선이 지워지고, 흔적만 남는다. 한국 전위예술 1세대를 대표하는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79) 화백이 1979년 제15회 브라질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에서 처음 발표해, 세계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호평받았던 퍼포먼스 작품 ‘달팽이 걸음’이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문명의 속도를 가로질러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내 작품은 고정관념을 벗어나, 그리거나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데서 출발한 사유(思惟)”라는 그의 ‘신체 드로잉’은 그해에 포르투갈 리스본 국제공모전에서 대상도 받았다.

1967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끊임없는 실험과 파격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 확보에 큰 발자취를 남겨왔다. 1975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명의로 ‘귀하가 하는 이벤트는 사이비 전위미술이다. 앞으로 당 관에서는 할 수 없다’는 공문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초대해 6개월간이나 전시한 것은 그의 작품이 최초였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장소의 논리’는 이런 퍼포먼스다. 바닥에 원을 그려놓고, 그 중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기” 하고 외친다. 이어서 원 안으로 들어가 발밑을 가리키며 “여기” 하고 외친다. 그러고는 원 바깥으로 나가서 원을 등지고 가리키며 “저기” 한다. 마지막엔 그 원을 밟으며 “어디, 어디” 하다가 사라진다. ‘어떤 주체가 장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여기, 저기, 거기, 어디 등으로 변환되는 것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런 그의 2010년 ‘신체 드로잉’ 한 점이 서울 옥션의 홍콩 경매에서 1억4000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그가 캔버스 앞이 아닌 뒤·옆 등에서 팔을 뻗어 가닿는 대로 그린 색채 유화 ‘보디스케이프(Bodyscape)’ 연작 34점을 모은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9월 8일 개막했다. 오는 31일 끝난다. “회화를 회화 밖에서 본 것”이라는 작품들이다. 연작이지만 더 구체화한 시적·철학적 제목 ‘현신(現身)’ ‘신체의 사유’ ‘신체의 풍경’ 등도 달았다. 이 화백이 표현한 ‘단절과 소통’의 미학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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