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 2021.10.26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wimg.munhwa.com/news/legacy/gen_news/202110/20211026MW144259929034_b.jpg)
광주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으로 징역 17년…‘영욕의 삶’
2002년 전립선암 수술 후 요양…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날 별세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1932~2021년)이 26일 숨졌다.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은 응급실로 옮겨진 이날 삶을 마감했다. 이날은 5~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42주기로, 두 명의 대통령이 같은 날 숨진 날로 기록됐다.
노 전 대통령의 인생은 한 마디로 ‘영욕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전두환 정권 시절 신군부 2인자로, 이어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지만, 지난 1996년 12·12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은 이후로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생의 막바지에는 암과 폐렴 등으로 긴 투병 생활까지 이어오면서 파란만장했던 인생역정은 쓸쓸히 막을 내리게 됐다.
◆빈농의 아들에서 신군부 2인자로 =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32년 지금은 대구 동구로 편입된 경북 달성군 팔공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노 전 대통령은 만 6세도 되지 않은 1938년 부친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우울한 소년기를 보냈지만, 삼촌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학업은 이어갈 수 있었다. 고향에서 공산국민학교를 졸업한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업중(현 대구공고)에 들어갔지만 이후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뜻을 품고 경북중으로 편입, 진로를 바꿨다. 하지만 지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경북중(현 경북고) 6학년(당시 18세) 때 학도병을 자원해 헌병학교에 들어갔다. 이어 1952년 1월 육군사관학교(11기)에 진학, 중학교 동창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동기생으로 다시 만나면서 인생의 큰 격변기를 맞이하게 된다.
군사정보대에서 영어번역 장교까지 역임했을 정도로 엘리트였던 그는 전 전 대통령과 함께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승승장구한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신군부 세력을 이끌며 1979년 12·12사태를 주도, 정권을 찬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이 된 전국 비상계엄 실시를 주도하는 등 오욕의 현대사를 창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군부 2인자로 성장한 노 전 대통령은 1981년 대장으로 예편한 뒤 정무장관에 기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6·29 민주화 선언’과 제13대 대통령 당선 = 2인자에 머물던 노 전 대통령이 대중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강하게 각인된 계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1987년 6월 29일 이를 수용한다는 내용의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면서다.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이 극에 달하던 당시 그는 대통령 직선제와 김대중 전 대통령 사면 복권을 전격 수용, 대타협을 이끌어내면서 파국으로 치닫던 시국을 하루 아침에 평정했다. 당시 미국 언론들로부터 “민주화를 앞당긴 인물”로 평가받은 노 전 대통령은 결국 같은 해 12월 직선으로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승리함으로써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게 된다.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1988년에는 자신이 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 유치했던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또 당시 냉전체제 붕괴 등 대외 정세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북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소련과 중국은 물론 동구공산권국가들 수교를 맺는 업적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은 또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한 간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 등을 골자로 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이끌어 내면서 우리나라의 외교 지평을 한층 확대했다.
◆퇴임 후 수감 생활 =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12·12사태를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과거 청산 작업에 돌입하면서 하루아침에 전직 대통령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됐다. 노 전 대통령은 결국 1996년 대법원에서 12·12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선고 받으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박탈되는 불명예를 안는다. 다만 수감 생활은 길지 않았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 간의 합의에 따라 사면·복권돼 석방됐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건강히 급격히 악화하면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에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이후 연희동 자택에서 요양 생활을 이어왔다.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이날 삶을 마감했다.
고 노태우 전 대통령(1932∼2021) 연보
1932년 8월 17일(음력 7월 16일). 대구 출생
1951년 7월. 경북고 졸업
1955년 9월. 육군사관학교 졸업(11기), 육군 소위 임관
1968년 6월. 육군대학 정규과정 졸업(중령)
1971년 11월. 보병 제21연대장(대령)
1974년 10월. 제9공수특전여단장(준장)
1979년 1월. 보병 제9사단장(소장)
1979년 12월. 수도경비사령관(소장)
1980년 8월. 국군보안사령관(중장)
1981년 7월. 전역(육군대장), 정무 제2장관
1982년 3월∼1986년 5월.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1985년 2월. 제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
1987년 8월 민주정의당 총재 취임
1988년 2월. 제13대 대통령 취임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개회선언
1988년 10월. 미국 방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1989년 2월.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1990년 5월. 민주자유당 총재 취임
1990년 12월. 소련 방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993년 2월. 대통령 퇴임
1995년 11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수수) 위반 혐의 구속수감
1997년 4월. 대법원 징역 17년 확정 판결
1997년 12월. 특별사면·출감
2006년 3월. 을지무공훈장 등 11개 서훈 취소
2021년 10월 26일 사망
민병기·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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