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 김수정 지음 / 시공사
男은 ‘활동’ 女는 ‘라인’에 초점
스포츠웨어·간호사·죄수복까지
몸매 선 부각시키는 관행 만연
건강·편의성은 아예 신경안써
의류 CEO의 ‘性상품화’ 폭로
의류 온라인 쇼핑몰 CEO가 쓴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스포츠 의류뿐 아니라 거의 모든 여성의 일상복에서 성차별과 성상품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폭로하는 책이다. 저자는 지난 2016년 이른바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눈을 떴지만, 자신이 업(業)으로 삼고 있는 패션 분야야말로 성차별과 성상품화의 온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극히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어느 날 남동생 바지를 우연히 입게 됐는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정말 안 입은 것처럼 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바지를 입는 줄 알았다.”
왜 여성복보다 남성복을 입었을 때 더 편할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탐구는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향했다. “남성복은 착용자가 ‘활동이 많은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진다. 반면 여성복은 활동성보다는 보이는 ‘라인’에 초점을 두고 제작된다.” 실제로 여성 스포츠 유니폼은 대부분 남성복에 비해 몸에 달라붙고 하의 길이도 짧다. 여성의 몸매 선을 부각시키는 관행은 간호사복, 의사 가운 등도 예외가 아니고, 심지어 여성 죄수복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자가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해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레깅스를 비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과거에는 꽉 조이는 코르셋 때문에 여성들이 호흡곤란을 겪거나 갈비뼈가 부러졌다면, 요즘에는 날씬한 실루엣을 연출하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실신하거나 거식증에 걸린다.”
‘옷 입는 사람을 중심에 둔 것’(남성복)과 ‘옷 입은 사람을 보는 사람을 중심에 둔 것’(여성복)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여성의 몫이고, 이는 단지 기분 나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남성복은 입었을 때 편하고 튼튼하게 제작되는 반면 여성복은 모양에만 신경을 쓸 뿐 입는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편의성 등은 뒷전이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차별은 원단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성복은 세탁기에 수도 없이 돌려도 보풀이 일거나 염색이 번지거나 모양이 변형되는 일이 좀처럼 없지만, 여성복은 물세탁이 아닌 드라이클리닝만 가능한 경우가 많다. 물세탁을 몇 번 하지 않았는데 옷이 상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차이는 세탁 시 수축률과 이염(염색약이 빠지면서 다른 곳으로 번지거나 배어드는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워싱 가공’ 유무 때문에 발생한다.
차별은 옷에 붙은 주머니 개수와 깊이, 봉제 기법, 후크와 단추 등 여밈 장치 개수와 형태, 코트의 내피 부착 여부 등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여성복은 발주한 지 2∼3일이면 뚝딱 만들어져 나오는 반면 남성복 제작에는 최소 10일, 양복은 최소 15일은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복은 원단 워싱 가공도, 복잡한 봉제도, 주머니도 생략하기 때문”이다. 여성복은 결국 빨리 만들어서 몇 번 안 입고 새것으로 대체하는 ‘패스트 패션’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같은 값을 내고도 여성이 더 형편없는 옷을 입어야 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여성들에게 “부당한 여성세”가 부과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치 소비’의 시대에 이제는 옷을 만드는 업체들이 친환경뿐 아니라 ‘젠더’에도 집중해야 한다며 자신의 사업 목표를 밝힌다.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복의 판도를 바꾸는 것이다. 한두 번 입고 찢어지거나, 타이트한 라인이 몸을 가두거나, 드라이클리닝으로만 관리해야 하는 의류는 일상복으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여성복의 기본값으로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주장은 의류 쇼핑몰 CEO가 썼다는 선입견 없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다. 208쪽, 1만45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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