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 화첩과 수첩 복각본.
윤형근 화첩과 수첩 복각본.

윤형근 초기작들로 다채로운 색을 쓴 것이 남색과 다색만 썼던 후기작들과 차이가 있다.
윤형근 초기작들로 다채로운 색을 쓴 것이 남색과 다색만 썼던 후기작들과 차이가 있다.

■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의 기록’출간 기념전 열려

생전 화첩·수첩·서신 등에 남긴
삶에 대한 소소한 기록들 엮어
장인 김환기,김수근,이우환 등
예술가들 메모 많아 사료가치도

한정판 아트 패키지 198개 출시
미공개 드로잉·회화 등 첫 공개


글·사진=장재선 선임기자

윤형근(1928∼2007).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다. 사후에 이름을 더 떨치고 있다. 방탄소년단 RM이 좋아하는 작가로 알려지면서 젊은층 팬까지 거느리게 됐다. RM은 지난 201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열린 윤형근 작품전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관람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막한 ‘윤형근의 기록’ 출간 기념전에도 등장함으로써 윤형근 애호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번 전시는 책 출간 프로젝트가 이어진 것으로, 초기 회화작들과 함께 미공개 드로잉 40점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윤 화백이 생전에 쓴 편지와 수첩, 사진 등 아카이브 자료도 최초로 공개했다.

윤 화백은 남색(Ultramarine), 다색(Umber)의 혼합 물감만을 사용해 큰 붓으로 화포(화布)에 내려긋는 필법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전시장에 걸린 초기작들은 색이 다채롭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여느 화가들처럼 초창기엔 다양한 색을 활용하셨는데, 세상에서 힘든 일을 겪으면서 남색과 다색만 쓰게 되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책을 보면 그 이유가 뚜렷하게 나와 있다. “내 그림은 잔소리를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58쪽), “오랜 세월 찌들은 나무의 빛깔은 그야말로 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 내 그림도 그런 느낌을 표현하려고 애쓴다”(67쪽).

그는 자신의 그림을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했다. “ Blue는 하늘이요, Umber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天地)라고 했고 구도는 문(門)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색과 구도로 하늘과 땅에 통하는 문을 만들고자 했던 것! 그는 평소 말수가 적고 겸허했으나, 예술가로서의 기개는 하늘에 닿고 땅을 품었다.

책은 윤 화백이 생전 화첩, 수첩, 서신 등에 남긴 소소한 기록들을 엮은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말을 많이 늘어놓아야 하기 때문에 … 그 일이 나에게는 재주가 없는 것 같다”(228쪽).

그는 이렇게 고백했으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자필 기록들은 삶에 대한 에스프리로 가득하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데서 느끼는 고독감을 비치거나(132쪽), 인간성이 황폐해지고 속물의 예술이 득세하는 현실에 대한 탄식(137쪽)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국내외 여행 중 아내와 아들에게 보낸 서신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 있다.

그가 ‘미국 아버지’라고 에둘러 표현한 장인 김환기 화백과 ‘어머니’라고 부른 장모 김향안 여사에 대한 기록들은 한국 현대 미술사를 알차게 채우는 데 도움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근, 김창열, 이우환, 최종태, 이일, 최순우 등 동료 예술가·학자들에 대한 짧은 메모들도 사료로 가치가 있다. PKM은 윤 화백 사후 전시를 연 인연으로 이번 책을 펴냈다. 소속 출판사(PKMBOOKS)가 처음으로 낸 생산물이다.

박 대표는 “3년 전부터 책을 준비하며 기록물을 정리했는데, 주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절실히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많았다”며 “작가의 육성을 통해 그의 인생관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손글씨를 해독하며 관련 정보를 일일이 추적하고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무척 힘든 작업이었으나, 작가의 넓고 깊고 깨끗한 인품에 매혹돼 일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했다.

책은 드로잉 80여 점을 수록하며 글의 내용에 맞게 배치했다. 화가답게 조형미가 물씬한 손글씨 사본도 여러 장 넣었다. 책 출간에 맞춰 ‘아트 패키지’ 198개의 한정판 에디션도 나왔다. 패키지는 ‘윤형근의 기록’ 1권과 윤 화백의 메모첩 중 3점을 재현한 실물 복각판, 회화 작업 이미지로 만든 아트 프린트 1종으로 이뤄졌다. 갤러리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할 수 있다. 전시는 11월 14일까지.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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