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고문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1921∼1968) 시인의 마지막 시로, 그의 사후에 월간 ‘현대문학’ 1968년 8월호에 발표된 ‘풀’ 일부다. 1945년 문예지 ‘예술부락’을 통해 시 ‘묘정(廟庭)의 노래’로 등단한 그의 문학은 6·25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징집됐다가 탈출했으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고 석방되기까지 겪은 참담한 경험, 한국 현대사의 한 변곡점인 4·19혁명 등에 큰 영향을 받았다.

초기엔 모더니스트였다가 대표적인 현실 참여시인이 된 그는 ‘시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을 뿐이고, 순수시와 참여시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동료 시인 신동엽이 조사(弔辭)에서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시인을 잃었다”고도 추모한 그는 시 ‘폭포’의 한 대목에선 ‘금잔화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하고 읊었다.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하고 시작한다. ‘푸른 하늘을’ 전문은 이렇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생전에 낸 시집은 1959년 ‘달나라의 장난’ 한 권뿐이고, 1974년 유고 시선집 ‘거대한 뿌리’에 이어 1975년 유고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가 나왔던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가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에서 지난 8일 개막해 오는 11월 4일 끝난다. 9월 3일∼10월 3일 서울 교보아트스페이스 1차 전시에 이은 것으로, 그의 시 34편을 중견 화가 김선두·박영근·서은애·이광호·이인·임춘희 등 6명이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 앞에서 누구나 가슴이 울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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