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11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장진호 철수작전을 지휘한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미국 해병 대장을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스미스 대장은 미 해병대 제1사단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으며, 특히 장진호 전투에서 혹한 속에 중국군 포위망을 뚫고 흥남까지 이동하는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등 2차대전에도 참전한 그는 1950년 7월 25일 미 해병대 1사단장으로 6·25전쟁에 참전, 인천상륙작전부터 장진호 전투까지 사단을 이끌었다. 1950년 10월 원산에 상륙한 해병 1사단은 미 제10군단 일원으로 11월 27일 장진호 주변까지 진격했으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중국군의 맹렬한 반격에 퇴로가 차단될 위기에 처하자 미 7사단 31연대와 함께 남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통해 철수작전에 돌입했다.
이 작전은 1만여 명의 병력과 수많은 피란민, 1000여 대의 차량을 비롯한 각종 전투 장비를 철수시킨 작전이다. 스미스 대장은 모든 장비를 버리고 병력만 수송기로 철수하라는 상부의 제안에 “해병대 역사상 그런 치욕은 없었다”며 거절한 뒤 12월 6일부터 영하 30도의 혹한과 중국군의 강력한 포위망을 뚫고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흥남항까지 110㎞의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공로로 1950년 12월 십자수 훈장을 받았다. 1953년 7월 중장으로 진급한 후 대서양 함대 해병대사령관을 거쳐 1955년 9월 1일 대장으로 예편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홍만식·이상철·김봉학·이건석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네 분의 선생은 일제가 군대를 동원하고 고종을 협박해 강압적으로 1905년 11월 17일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자, 이에 통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려 조국 독립의 불씨가 됐다.
홍만식 선생은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이며 갑신정변의 주역인 홍영식의 친형으로 갑신정변 이후 20여 년간 여주의 산골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다가,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의관을 차려입은 뒤 부친의 묘소에 사별 인사를 드리고 독약을 삼켜 순국했다. 이상철 선생은 1904년에 학무행정을 담당했던 학부 주사로 임용된 뒤 민영환 선생 등의 자결 소식이 들려오자 뒤를 이어 약을 먹고 30세의 나이로 자결 순국했다. 김봉학 선생은 평양에 있는 군대에 입대해 평양진위대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로 상경해 징상대(徵上隊) 상등병으로 복무하다가 군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동지들과 모의한 일이 누설돼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고 자결 순국했다. 이건석 선생은 을사늑약 이전인 1905년 10월경 경운궁 대한문 앞에 엎드려 “일본과 조약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려 했으나, 일본군사령부에 체포된 후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6개월이나 죄목 없이 감금된 뒤 옥중에서 피틀 토하고 순국했다. 홍만식·이상철·김봉학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이건석 선생은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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